부끄러운줄 모르고

일기

2013. 11. 27. 22:34




오늘은///군대에 있는 동생에게///약 3년전 내 기타를 빌려가 부러트린 동생 친구로부터 성의있는 사과문을 받아오거나 돈을 받아오라고///요구했다.




동생은 당시에 그 친구가 미안하다고 했다지만 그야말로 '아 미안하대..' 뿐이지, 내 기억에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은 기억이 없다. 고가의 물건인데다가 나에게 감정적인 가치가 엄청난 소품인데, 잘린 목이 허술하게 끼워맞춰진 채로 책상 옆에 진열되어 있는 기타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화가 올라오던 참이었다. 종종. 분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고, 동생에게라도 해꼬지하고 싶을 정도로. 자기 위주로 재구성하는 사람의 기억이 간사한 탓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풀리지 않은 마음을 오랫동안 내팽개쳐둔 탓인지...


처음 산 기타였고, 고등학교 3년 내 치던 기타였다. 외고 중에서도 보수적인 학교에서 갓 생긴 밴드부였던 탓에, 온갖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대강당 뒷편 휑한 대기실에서 점심 저녁 밥먹을 시간을 쪼개어 연습하던 시간들이 깃든 기타였다. 난방이 되지 않아 한겨울에 라지에이터를 하나 가운데 놓고 친구들과 무릎 마주대고 앉아 덜덜 떨며 준비해 공연했던 추억들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보잘것 없는 기타실력으로 무대에 올랐던 부끄러운 장면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였는지ㅡ 매일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처럼 살았던 그 때의 민망하고도 아픈 기억, 선생님들한테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한일 투성이었던 그 때의 감정이 모두 다 한데 섞여있어서 졸업 후에는 보이지도 않는 방 구석에 묵혀두고 있던 참이긴 했다. 아무래도 소화할 수 없는 감정들이 떠올라서 곁에 두고 쳐다보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동생이 빌려나갔다가 날벼락처럼 두동강 내왔던 날 까지도 불편한 마음이 정리가 안되서 그 기타로부터도, 기타를 부러트린 사건으로부터도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당시에 잠시 살던 집에서 동생과 크게 싸웠던 기억은 난다. 내가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방에서 이불과 베개만 던지던 기억, 치졸하게 동생 방에서 내 책, 내 시계, 내 씨디를 다 빼왔던 기억. 저 멀리 프랑스까지 가서도 가끔 생각나면 동생이고 그 친구고 시험 망하라며 저주하기도 했고... <어차피 한번도 꺼내보지도 않던 기타인데 뭐 그러냐>는 동생의 말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 때까지도 무작정 화가 나는 마음을 정리를 못 해서, 니가 뭔데 내 경험과 시간을 멋대로 평가하냐는 것 같은 제대로 된 말을, 그러니까 상처받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억울한 일도 상처받는 일도 생길 수 밖에 없고, 항상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라도 내 마음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이 지난 이야기를 지금 꺼내며 사과를 요구하는게ㅡ 당사자나 제3자나, 어찌됐든 나 아닌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황당하고 미친 짓처럼 보일지 인식은 하면서도 이상하게 그런 것들은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동생이 성의없이 대꾸하면 언제든 폭발할 준비를 마치고 말을 걸었는데, 의외로 동생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다.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내가 왜/얼마나 화가났었는지 전달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산 기타였고,를 손으로 적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이런 이상한 결심을 한지는 아직 하루밖에 안됐고, 기분은 앞으로 아마 오락가락할테지만 응어리가 하나 풀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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