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기

2015. 3. 16. 20:14

 어떤 사람을 계산없이 사랑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한 경험인데 왜 항상 상처가 되는지 모르겠다. 헤어질 준비를 조금씩 해왔고, 그래서 조금만 지나면 괜찮을것 같았지만 상상에서 현실로 쫓겨나오니 밀어닥치는 상실감에 괴로웠다. 안절부절,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이 고통을 멈추기위해 붙잡아두면 안될까하는 생각도 했다. 지루하거나 성가시거나, 가끔 상처가 되더라도, 꼭 서로 사랑하지 않더라도 같이 있으면 덜 힘들 것 같았다. 이러니 핸드폰 번호를 외우지 않길 잘했다싶다. 저절로 외워질까봐 의식적으로 오래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실수로라도 통화버튼을 누를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너의 인생에서 깔끔하게 퇴장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서러웠다.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그 결정을 상대방이 먼저 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이따금 그냥 때가 됐다고, 복잡할 것없이 사랑이 그냥 수명을 다한 것뿐이라고 되뇌었지만 막상 헤어지고나니 그 사랑이 왜 바닥난걸까를 묻게된다. 내가 너에게 지친만큼 너도 똑같이 내게 지친 것일텐데. 일단 울컥거림에서 벗어나 무언가 사고해보려고, 자존감을 해치지 않는 만큼만 자기반성을 해보는데도 앞으로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나날이 퇴행하는 것 같은 행태. 사소한 일상의 결정들마저 전가하는 것이나 말초적인 사고ㅡ 의미없는 말들의 반복,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생활 모두가 버티기 어려웠을거야, 이해해. 그런데 과연 내가 나아질 수 있을까? 내가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나? 니가 보았던 나의 장점들은 모두 잠시 꾸며낸 것들이고 이게 원래 내 모습인건 아닐까?


 니가 있는 곳이 내 집이 되길 바랬고, 니 곁에서 편안하고 싶었다. 무언가 '로맨틱한' 것보다는 동반자같은, 그냥 믿을 수 있고 지속되는 관계를 원했다. 무엇하나 뜻대로 굴러가주진 않았지만. 너는 내가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는 내가 원하는 분위기나 느낌을 자아내는 순간순간의 기억에 의존해서 살았다. 그래도 한동안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고, 도취라고 할지언정 아껴두지 않고 할 수 있는만큼 사랑했다.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거나, 와닿지 않았거나, 부담스러웠을지라도. 


 책상위에 나뒹굴던 마지막 저녁식사의 영수증까지 상자안에 모아넣고 닫았다. 찬양이건 비난이건, 나는 너를 해석하지 않을거다. 추스르고, 너없는 인생을 살아야지.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일기  (0) 2015.03.29
life for rent  (0) 2015.03.28
일단  (0) 2015.03.05
기념일  (0) 2015.02.15
(the) help  (0) 201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