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일기

2015. 6. 30. 21:49



 내게 주어진 단서들을 가지고 혼자서 몇시간이고 해석하고 추리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자극들을 직접 겪으며 느끼는 바를 그대로 저장하고싶다. 자의적 상상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이 관계에 끼어들지 않게끔.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같은 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기분 좋게 광화문 대로를 걷는데 대뜸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커플링이에요? 우리 영화 같이 봤어요. 커피 한잔 해요. 상영시간 내내 하품을 했던 것을 알고있다는 데서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 길 위에서의 이 사건, 관심이 좋았을 뿐 사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없었는데 이 사람은 내가 내적으로 빈곤하다고 느껴질만큼 풍부했다. 겸손하고 진지하고 독특한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는 거리가 그만큼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영화보다 더 생생한 자극을 주는 이 사람에게 끌린다. 


 배가 부르지만 아쉬워서, 그냥 같이있고 싶어서 맥주를 네 잔이나 더 마셨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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