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일기

2015. 12. 20. 22:31



 언제부턴가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문어 괴물이 나오는 꿈인데, 나보다 큰 문어가 나온다는 것만 똑같고 내용은 조금씩 다 다르다. 어렸을 때, 십대 초반에는 그 문어가 난동을 피워서 만화에서처럼 책장의 책이 떨어져 내리고, 바닥도 갈라지고. 우리 집이 망가졌었다. 당시에는 무서운 꿈이었다. 최근 한번은 방을 치워도 치워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난장판이 되었던 적이 있다. 내가 없는 사이 그 문어가 방을 어질러놓아서... 끝내는, 짜증과 해결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 주저앉아 울다가 깼다. 또 한 번은 그 문어가 내게 치근덕거렸다. 팔을 감고 옆에서 말을 거는데 예쁜 여자랑 나를 비교해 낮은 자존감을 건드렸던 것 같다. 


 문어 괴물이라니, 그냥 내 정신상태가 유치한 것을 드러내는 줄만 알았는데 최근 정신분석을 받다 알게된 것은, 문어가 문어(文語)의 상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증할 수 없지만 생각할수록 그럴듯했다. 문어가 문자 언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들어맞았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부터 나는 별로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다행히? 엄마도 교과과정이나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신나게 아주 온종일 뛰어놀며 컸다. 숙제도 준비물도 종종 빼먹고, 뭐 그런 학생이었다. 그런데 엄마도 집착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종종 내주는 독후감 등의 글쓰기 숙제. 수학 숙제나 온갖 수행평가를 해가든 말든 간섭하지 않던 엄마인데... 유독 글쓰기 숙제만 있으면 굳이 검사를 맡아야 했고 엄마의 마음에 들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고쳐 써야 했다. 나는 그냥 나가 놀고 싶은데, 왜 자꾸 이걸 다시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짜증이 났다. 분해서 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계속되자 내가 그렇게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이 얼마나 엉망이면 계속 고쳐오라는 걸까, 라는 생각은 나는 글을 정말 못써, 혹은 나는 글쓰기가 싫어, 가 됐다.


 자의식이 생길 때쯤 부터는 글쓰기 숙제를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다른 숙제처럼 대충해서 냈는데, 어떤 평가를 받든 제출한 글(각종 보고서, 독후감 등)은 왠지 쳐다보기 싫고 다시 읽기 부끄러웠다. 그러다 이즈음부터는 글의 첫 문장을 쓰기 전부터 싫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해서, 대충 해치우는 것조차도 어려워졌다. 글쓰기를 마주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이상할 정도로 커졌다. 엄마는 내가 글을 감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손을 뗐는데, 새롭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처럼 나름의 지적 호기심, 허영심이 있어서 주말과 방학이면 각종 인문학 연구소, 대안학교, 철학 교실 등을 다녔었다. 읽을거리가 쏟아져 나오고, 생각할 거리가 생기고 자극을 받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인 데다가 다행히, 아무도 글쓰기 과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말을, 표현을 잘 못 하기 때문이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내게 사람들은 "아... 너는 글을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말이 서툴면 글을 잘 쓸 거라는 생각에 더해서, 엄마 아빠가 모두 글을 쓰는 사람이란 것이 어딜가나 따라다녔기 때문에 (애초에 저 모든 기회는 엄마가 물어다 준 것들이었다) "너는 글을 정말 잘 쓰겠구나!"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이 모든 판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도 싫고, 글로 이루어지는 인문학계?도 싫었다. 여기선 엄마아빠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싫었다. 아무도 내가 지적 호기심이 조금 있을 뿐,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긴 벅찬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았다. 남다른 가정에서 자라, 굉장히 조숙하고 똑똑하며 글을 잘 쓸 애라고 생각하고 날 대했다.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이 즉석에서 듣기 좋은, 예의 바른 말을 떠올려 건넸을 뿐이었겠지만, 내게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발목을 붙잡고 날 끌어내리는 돌덩어리였다. 


  그렇게 살다 고3이 되고 수능을 마쳤을 때, 나는 논술문을 끝맺지 못하는 학생이 되었다. 한두 달이지만 입시가 달린 만큼 매번 다섯 시간씩 수업 + 글쓰기 + 첨삭을 모두 하는 논술 학원을 매일 갔는데, 나는 한 번도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주어진 지문을 보면 뭐든 쓸 거리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걸 짜임새 있는 글로 엮어내는 것이 되질 않았다. 항상 서론 결론 없이 본문만 두세 단락 써내는 것도 힘겹게 몸을 비틀고 뇌를 쥐어짜야 가능했다. 첨삭을 맡은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쓰기만 해보자, 그것만, 응?이라고 했다. 그러다 한번은 학원에서 직전 학기의 고대 수시 논술 기출문제가 나왔다. 원래 알고 있는 지문이었고, 학교에서 이 문제를 다뤄본 적이 있어서 모범 답안까지 읽어본 문제였다. 모범답안을 떠올려 베끼듯 써서 처음으로 서론과 본론, 결론을 모두 완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간 학원에선, 내 글이 모범답안으로 뽑혀 유인물로 출력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그 글을 해체해가며 분석까지 이루어졌다. 선생님도 칭찬했고(아주 잘 썼어요), 첨삭 선생님도 시원하게 웃었고(그래 하니까 되잖아!), 모르는 얼굴들이 흘끔 쳐다보기도 했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이거... 한 번 풀어본 문제이고 우리 학교 모범답안의 서론을 가져다 쓴 거라고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입은 가, 나군에 예비번호도 없이 떨어지고 논술도 면접도 없는 다군에만 붙었다. 논술을 못 해서 가, 나군에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사실 수능 점수가 빠듯한 것도 컸다.)


 글쓰기는 그렇게 어엿한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다행히 경영대에 들어와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한 번 교양수업으로 선택한 '사회학의 이해' 시험이 논술이라서 역시나 글을 끝마치지 못하고 D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겼다. D0, F보다 못하다는 D0가 성적표에 있는데도 재수강은 생각도 안 했다. 글쓰기가 그만큼 싫었다. 아주 넌덜머리가 났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건, 딱 5년 전 교환학생 때 의미론 수업을 듣고 공부 자체가 너무너무 흥미로워서 읽고 떠오르는 바를 적으면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에 푹 빠진 나머지, 한 걸음 물러서 그것을 써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읽다가, 집에 들어와선 누룽지만 후딱 끓여 먹고 노트북을 열고 답안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니 시간은 새벽 네 시, 분량은 아홉 장이었다. 한 학기 동안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글이라는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내용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형식에만 집중했냐 하며는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리고 돌아와선 영미산문(A0), 미국문학특강(B0)에도 도전했는데 성적보다 일단 낙제(사회학의 이해......)수준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감격스러웠다. 영미산문에서는 한 번 과제로 제출한 글이 1등으로 뽑히기도 했고, 미국문학특강은 수업 뒤풀이에서 교수에게 따로 격려를 받았다. 아직 글을 풀어가는 능력이나 사고의 예리함은 한~참(벌게진 얼굴로 굳이 강조하심) 모자라지만 문장이 좋고 무언가 매력이 있다고. 


 문어는 왜 아직도 잊을만 하면 꼭 한 번씩 꿈에 나오는 걸까. 지금은 백지를 보고 패닉하는 수준에서 벗어났고, 글쓰기 과제는 꼬박꼬박 기한을 맞춰 해내고 있으며 성적도 나쁘지 않다. 아무도 내게 글을 잘 쓴다고 하지 않지만 가끔 내가 썼던 글을 보고 흐뭇해 할 때도 있다. 자기확신이라고 해야 할지...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나, 했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아직도 글에 집착한다는 점에선 예전과 같으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글에 대한 자존감?이 갈대처럼 수시로 나부낀다는 거다. 어디서 봤는데 '자존감이 낮다'라는 것은 항상 자존감이 낮은 것보다는 자존감이 불안정한 것에 더 가깝다고 했다. 어떨 땐 좀 괜찮은 것 같고, 아 이 정도면 잘 썼지 싶다가 진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멘탈이 깨져서 내 글이 참을 수 없이 형편없어 보이고, 스스로 잠시 우쭐했던 마음이 창피하고 괴로워진다. 학교에 다니면서 문제없이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뿐이지, '글'에서 받던 스트레스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같은 또래인데 저사람은 도대체 뭐지?싶을 만큼 독서량이 방대하고 지적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보고, 다시 몇 개월간 일기든 뭐든 한 줄도 쓰지 않던 적도 많았다. 몇 문장 채 쓰지 않았는데도 열등감에 내가 써낸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몽땅 지워버려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럴 땐 실제로 글이 못생겼던 것 같다.


 이제는 글이 문제가 아니고, 글에 드러나는 사고의 수준이 문제인 것을 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안정도 찾았다. 나는 저 사람들만큼 많이 알지 못하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지만 무조건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은 저 길이 아니지만, 합리화를 하자면 내가 지향하는 방향도 아니다. 나는 다행히 내게 적합한 전공을 아주 잘 택해서, 저런 무시무시한 고뇌의 늪이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다. 여기선 많은 것을 객관화해서 계량할 수 있고, 무언가를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이 좋다. 그리고 내게 항상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던,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저곳은 여유가 날 때 들여다보며 새로운 인식의 기쁨을 느끼는 데서 만족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면을 풍부하고 고유하게 가꿔서 자기만의 세계를 다져온 사람을 만났을 때 대등하게 소통할 수 없다는 점 정도. 과부하가 걸리는 내가 딱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 또한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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