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the Light Is: John Mayer Live in LA

후기

2015. 12. 24. 23:57



 외출준비 할 때나, 대충 끼니 차릴 때, 아니면 밤에 술 마실 때 자주 틀어놓는 콘서트 비디오. 내가 팬이라서 그런가... 이 영상은 화면 자체만으로도 분위기가 좋다. 또 간지러운 pop tunes, 적당히 bluesy한 곡, 존메여의 화려한 기타 솔로, 그리고 대중성이 좀 떨어지고 완전히 블루스 락 같은 John Mayer Trio의 곡들까지 다 담겨있다. 특히 Stop this train은 가사가 한 단어도 빼놓지 않고... 너무 예쁘다. 게다가 잘 들어보면 기타 음이 퍼커시브 리듬이랑 섞여서 기차가 칙칙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곡 중간중간에 말을 하는 것, 그리고 인터뷰 영상?을 보면 (어떤 파편들에서) 이 사람 성격이 좀 유난한 게 느껴진다. 마음이 심술궂다거나 안하무인으로 남을 대할 것 같은 방향이 아니라, 자의식 과잉이라고 해야 할까... 약간 피곤하다. 연주하고 노래 부를 때 외에 이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에선 스스로에게 푹 빠져있는 것, 도취된 것이 드러날 때가 있다. 세상에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린 나이에 이만한 스타가 됐으니 뭐 그럴 수 있겠지 싶기도 한데, 아름다운 노래만 듣다가 자연세계의 존 메이어라는 사람을 알게 되니 약간 깼다. 게다가 한동안 여자 문제로 아주 난리난리를 해서 국민 비호감으로 등극하고, 성대결절로 슬럼프를 겪었지만 이 사람의 음악만큼은 계속 좋았다. 물론 아직도 엄청 좋다.



 존 메이어는 몇 년 전부턴가 컨트리 쪽으로 확 돌아선 앨범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어떤 앨범 자켓에선 예수머리에 카우보이 모자에 온갖 천을 칭칭 두른 채 어디 사막 같은 곳에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존 메이어의 사진이 있었다. 못 알아볼 뻔. 처음에는 음악이 심심해져서, 도시적인 느낌, 세련된 느낌이 없어져서 약간 실망했었는데 듣다 보니 이전의 음악만큼이나 지금의 음악도 좋다. 사람이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가끔은 그냥, 집중하지 않고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있던 중에 (존 메이어의) 가사가 갑자기 똑똑히 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내가 진짜 못된 여우인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I'm a good man, with a good heart,가 흘러나와서 마음이 찡했다. 힘들었을 텐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이렇게 단순한 말로 녹여내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아무튼 이제는 연이어 had a tough time, got a rough start, but I finally learn to let it go.까지 따라부를 수 있다.



 오늘은 우울하게 등교하면서 존 메이어 곡을 쭉 불러와놓고 '임의재생'을 눌렀다. 시의적절하게 내 귀에 울리는 곡은 이거. 


Don't be scared to walk alone 

Don't be scared to like it   

There's no time that you must be home 

So sleep where darkness falls


Alive in the age of worry

Rage in the age of worry

Sing out in the age of worry

And say, Worry, why whould I care


 가끔 Bahamas나 Ben harper, Ben Howard, Ray Lamontagne 같은 사람들을 들으면 덜 직접적이고(알쏭달쏭) 음울해서 그런지 왠지 더 깊이가 있어보이지만, 제일 내 마음을 움직이는 건 존메여다.



 저번에 Late late show를 몇 번 진행했던 것에선 비호감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었고, 또 최근 한 인터뷰에서 "I'm a recovered ego-addict"라고 말한 것을 봤다. 스스로도 자기의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하려 노력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때론 여전히 말이 빠르고 말이 많고... 자기 말에 지나친 확신이 있는 것 같은 동시에 이 모든 자기의 모습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그래도 (그런 만큼) 곡을 들으면, 그 도취의 이면에 고통이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느껴지고. 힘든 고민을 이렇게 예쁜 곡들로 만들어 낸 게 존경스럽다. 얼마 전 어쩌다 읽게 된 니체의 문장은, '무서울 만큼의 깊이가 없으면 정말로 아름다운 표면도 생기지 않는다(il n'y a pas de surface vraiment belle sans une terrifiant profondeur).'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 사람이 그냥 가볍고 실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내 과대망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  (3) 2016.02.02
수형도(tree diagram) 그리기  (2) 2016.01.22
우리말 맞춤법 검사기  (2) 2015.12.16
참고문헌 정리 프로그램  (0) 2015.12.14
Infographics  (0) 201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