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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6. 1. 7. 04:12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한 시간 반은 지난 것 같았다. 마침 창밖으로는 해 지는 하늘의 색이 너무너무 예쁘게 보여서, 당장 뛰쳐나가 빛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었다. 교수님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는 중이 아니라 그냥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창밖을 쳐다볼 순 없었다. 눈길을 줄 때마다 변해있는 하늘빛에 마음이 술렁술렁... 사진을 찍고 싶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마침 논외로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교수님은 눈물을 감동으로 읽으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석사 논문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쓰고 치우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생각만 해도 창피한 출간물이 쌓이는 게 싫었다. 흑역사는 지금도 이미 많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당장 내 주변 사람들의 절대다수도 읽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것에는 떳떳하고 싶었다. 잘 쓰려는 욕심이 아니고, 그냥 막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를 위해 교수님은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일단은 논문에 적합한 언어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일상어로 쉽게 쓰려는 마음이 너무 앞섰는지, 애기같은 표현이 꽤 많았다. 그리고 언어의 격, 스타일 말고도 학문적인 엄밀함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지적받으며 놀랐다. 이를테면, '문장이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했다. 언어가 표현하는 상황의 맥락이 자연스럽다는 것인지, 언어의 형식이 자연스럽다는 것인지. 여기서 선택을 하고 나서도 자연스럽다는 것이 또 정확히 무엇인지가 문제였다. 1. 언어가 자연스러운 것은 읽기 속도로 측정할 수 있다, 2. 빨리 읽힌다는 것은 의미 처리가 빠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3. 그것을 곧 이해가 쉽다, 자연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정리해야 넘어갈 수 있었다. '피험자와 문항별로 반복측정분산분석을 실시했다'라고 쓸 수 있는 20페이지짜리 소논문과 msec을 밀리세컨드, 천분의 1초 단위라고까지 설명해야 하는 학위논문은 이렇게나 다르다. 피곤하기도 한데, 확실히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 정말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는데, 그것들을 다 깨끗이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신중한 태도를 일상에도 끌어와야 할 텐데, 내가 했는지 기억도 못할 말을 생각없이 뱉어내는 건 나아지질 않는다...)


 교수님은 학생의 지도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시는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으나, 그렇게 단순하게 마음이 다져지진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가 써낸 내용의 흐름, 논리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교수님이 부족해서는 절대 아니고, 내가 잘나서는 더더욱 아니고... 전공분야가 너무 달랐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받아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쓰면 자세하고 친절한 논문이야 되겠지만...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 구성이 적절한지의 내용에 대한 책임은 홀로 져야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사실 그냥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는 건지, 의미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확신을 줄 수 없다는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책임의 무게를 지기에는 좀 이른, 그냥 떨래떨래한 학생인데. 당장 봄이 되면 비전공자이긴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들을 상대로 내가 쓴 것을 지키고 설득해야 심사를 통과할 수가 있다. 안 떨고 차분하게 말이나 할 수 있을지. 아무튼, 교수님이 시간만 내주신 게 아니고 정말 마음을 써주시는구나, 하고도 느껴졌다. 논문의 지도가 끝나고도 박사과정과 그 이후의 취업계획까지 이야기와 격려와 조언이 이어졌으니. 교수님이 내게 갖고있는 이해(손익)를 분리해서 따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긍정적 평가와 지지적 개입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치만 이해가 많이 걸려있긴 했다. 교수님은 바로 당일에 내게 부탁하실 번역거리가 있었고, 올 해에도 큰 공동연구가 걸려있었으며, 아주 길게는 '제자'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감사일기같이 되었지만 각종 부당함에 초연해졌을 뿐 억울한 일도 많다. 뭐, '인간이니까'를 붙여서 생각해보면, 모든 상황을 내게서 분리해놓고 영화나 소설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많지 않다. 아무튼 두 시간 반도 넘고, 날이 아주 깜깜해져서야 연구실을 나올 수 있었다. 끼니를 대충 때우고 헬스장에서 근육을 혹사시켰다. 


 한동안 입안을 맴돌던 영화 러시안 소설의 포스터 문구, '내가 쓴 거... 한 번 볼래요?'가 싹 내려갔다. 술로 갈증을 채우고, 새벽 늦게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왔다(한 달만이다!). 영화에 아주 잔인한 장면이 많았는데 옆 사람을 붙들고 싶은 마음을 잘 참았다. 요샌 눈물이 많아서 걱정인데, 결단력에 문제가 없는 걸 보니 우울이 온 건 아니고 이상한 감상병이 도진 것 같다. 노인을 보면 저 사람도 한때 어린이였겠지, 싶어서 눈물이 나고 애기를 보면 쟤도 늙어서 꼬부라지겠지, 하고 눈물이 난다. 해가 질 때 하늘빛이 예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북한 고위 장교의 얼굴이 좋아서 눈물이 났다. 설에는 이모부의 말에 상처를 받아 몰래 엉엉 울었다. 당연히, 영화에서 이병헌의 팔이 잘리는 장면을 보고도 잠깐 울었다. 일기를 훑어보며 일상의 기록은 겉멋만 빼면 역시 소중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문장을 쓰면 모든 생각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한발 물러서서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생각이 들기 전에 먼저 쏟아져나오는 말들만 적기로 했는데.


 어제는 밤중에 아무 전조 없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종종 있는 지끈한 두통이 아니고 오만상을 찌푸릴 만큼 아파서 뇌에 중병이라도 생겼나 싶었다. 수면제랑 두통약을 먹고도 한참을 잠 못 들었다. 이렇게 아플 때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인상을 펼 수가 있다. 불도가 깊은 큰스님인 마냥 그냥 고통이 거기 있구나, 그렇구나, 이 감각을 '아프다'라고 생각할 것은 무엇인고, 그냥 이 느낌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마음을 놓아야 가만 누워있을 수도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응급실에 가져가려고 먹은 약을 모두 주머니에 챙겨두고 거실 소파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 일찍 온 아줌마는 들어가서 자라며, 새벽까지 티비보다 잠들었느냐며 웃었다. 그날도 그렇게 천하의 백수 게으름뱅이가 됐다. 근데 진짜로 턱이 두 겹이 될 것 같다. 그 이후로 두통의 기운은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언제 엄습할지 몰라서 아주 조심조심, 내 비유를 맞추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모두 하는 걸로. 그런데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보다 해치우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적다. 그래서 오늘도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우울이 가시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다.


 며칠 전 연구실에서 봤던 노을과 쓰고있는 논문까지는 또렷한데, 다른 모든 사건들은 단편적으로 두서없이 뒤죽박죽이다. 약간은 무섭고, 혼자인게 좋은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일기는 일기장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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