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늘은 또 오늘이네요

일기

2016. 1. 14. 02:48



 가끔은 시간이 눈 앞에 펼쳐진 느낌을 받는다. 상품화된 것처럼 똑같은 순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끊임없이 밀려오고, 그럼 나는 그 순간 순간을 소비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움직이고. 우울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불안과 회의를 꾹꾹 눌러 담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선 현대인들이 시간성을 상실해서, 그러므로 완결된 삶의 형식도 잃어버려서 불시에 죽음을 '당할' 뿐이라고 했는데... 지금 떠올리니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그런데 방향과 의미가 있는, 스스로 이끌어가는 그런 삶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제까지의 삶에 어떤 중요한 매듭도 없이 그냥 죽 떠내려온 나는 사실 무서워할 것도 없다. 공들여 쌓는 것이 있어야 아쉬움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내 삶의 형식은 오직 소비, 그뿐이다. 감정, 인식, 지식, 신념, 경험 뭐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맥락이 없고, 두서가 없다. 오늘 또 오늘, overjoyed. there's joy in feeling sad. 불안과 슬픔에도 쾌의 감정이 있다지만, 그리고 그게 뭔지도 알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다. 당장 죽는 게 무섭다면 그냥 그건 동물적인 공포일 뿐이지, 인간적인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어제는 맥주를 세 캔이나 사서 들어왔는데, 약간의 딴짓과 일,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꺼내 마시는 것을 잊어버렸다. ㅋㅋㅋㅋ.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두부과자와 맥주를 마셔야지, 하고 마음먹고는... 6시간 뒤 정말로 실행했다. 알콜중독 문진표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술 생각 날 때가 있냐는 항목이 있다던 말이 생각이 났는데, 왠지 약간 통쾌했다. 비스듬히 앉아서 맥주랑 책이랑, 기분 좋게 게으름을 피는데 오늘은 이메일에 전화까지 울려댔다. 내가 몸담은 이 쪼끄만 집단에도 이해가 얽혀있는데, 사람들은 각각 나름의 정교한 방식으로 그 이해를 구획 짓는다. 아무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고, 몸을 사리려 에두른 말로 의도와 행동을 몇 겹씩 포장해서 건넨다. 이 코드는 분명 문화적이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아주 피로했다. 아무리 계산을 포기해도 사람들의 어투에서, 분위기에서 순수하지 않은 목적이 느껴진다. 게다가 오늘은 직접적으로 불쾌('fastidieux')를 전달해온 사람도 있었다. 처음 보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며 깜짝 놀랐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윗사람들의 언짢음을 받아내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말단이 응당 맡게 되는 일인 걸까. 창밖으론 눈이 펑펑 내리는데 나는 그 눈이 어이가 없었다. 내 참, 어떻게 눈이 저렇게 내리고 난리지, 하고 한숨이나 크게 쉬었다. 


 온 마음과 온몸으로 살고 싶은데, 이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 줄은 몰랐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  (0) 2016.01.21
l'étranger  (0) 2016.01.19
끝없이 펼쳐진 들  (0) 2016.01.13
그냥 일기  (0) 2016.01.12
제목없음  (8) 201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