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일기

2016. 1. 23. 20:50

 참다 참다 화가 나서 글을 쓴다. 이제껏 아빠는 가부장적인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이거든 저거든 참을 수가 없다. 아빠는 오늘 정확히 일곱 시에 귀가해 내가 주문한 떡볶이와 튀김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엄마는 도대체 운동을 좀 일찍일찍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식사시간에 이게 뭐냐고 소리쳤다. 나는 엄마에겐 엄마의 일정이 있지 않겠냐고, 밥 해주는 게 무슨 의무도 아니고, 라고 했는데 아빠는 그게 왜 엄마의 일이 아니야! 미리미리 해놓고 저녁 시간에는 밥을 해줘야지! 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당황스러웠다. 아빠에게 (간 크게) 지금 21세기에, 심지어 아빠처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했다. 우리가 애기들이냐고. 아빠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한 숟갈도 뜨지 않고 저 멀리 가 앉아 티비를 틀었다. 연이은 한숨 소리. 분을 삭이는 게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노가 폭발해서 책이 날아다니고 나는 몇 대 맞고 난리가 났을 텐데, 이 정도나마 된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아빠에게는 정말로, 엄마처럼 교육을 많이 받은 여자가 필요하지 않다. 엄마와 아빠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 차원을 넘어 잘못되었다고까지 느낀다. 아빠에겐 오로지 사근사근, 집에 붙어 아빠의 시중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엄마는 정말 미련하게도 이 긴 세월 동안 아내가 아니라 ‘어머니'로서, 아빠의 자기애성, 연극성 성격장애를 보듬어줄 보호자 역할을 감내하고 있다. 엄마도 엄마 나름의 장애를, 나도 나 나름의 장애를 갖고 살지만 (우리 집은 정말 엉망진창이다) 아빠처럼 타인에게 저렇게 거리낌 없이 고통을 선사하진 않는다. 심지어는 자기반성은 눈꼽만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하게… 엉망진창이다.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엄마가 도착했고, 들어오면서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해맑게 ‘다들 저녁은? 소고기 샐러드 할까? 아니면 그냥 된장국?’ 하는데 아빠는 그냥 '어…’라고만 했다. 엄마는 아빠가 티비에 정신이 팔린 줄 알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선 부엌에 들어와 내게 무슨 일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이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는데,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애꿎은 엄마에게 퉁명스레 ‘됐어 난 먹었어’하고 포도주를 한 병 통째로 들고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엄마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부엌을 정리하는데 아빠가 식사 준비를 다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투는 밥해줘, 배고파, 빨리해줘 등등이 아니고 ‘지금 요리 중인 거야?’ ‘뭐 먹을 것 좀 있을까?’ 이런 식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아빠가 기대하는 가정적인 아내, 혹은 귀엽고 애교많은 딸의 모습에 나와 엄마가 부합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거라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아빠에게 화가 나는 것도 똑같이 이기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빠라면, 부모이면 윗사람으로서 응당 자식을 이해하고, 헤아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역으로 항상 내가 아빠의 이상행동을 이해하고, 헤아려야 하는 상황에 신물이 났다. 아빠가 아주 못 배운 사람이거나, 알코홀릭이거나, 노름꾼이거나… 하다못해 이모부처럼 괴팍한 공학자만 돼도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치만 정말 싫은 건, 가증스러운 건 아빠가 인간과 삶에 대한 공부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을 때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아빠는 갑자기 엄마에게 존댓말을 하곤 했다 ‘우리 이것 좀 더 먹을 수 있을까요? 허허허 여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시기에 내가 똑똑히 들은 말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였다. 아빠는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처럼 대중적이거나 의미가 복잡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자신을 포장할 수 있는 굉장히 창조적이고 괜찮은 말이었을 거다. 지금 와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정말 화가 치민다. 이런 사람이 나, 나, 나의 아빠라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고, 동의한 적 없이 삶을 떠맡았는데 왜 강제적으로 노역을 부과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무엇을 갚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효도에 가장 근접한 개념은 경제적인 부채의식 정도이다. 사실 그마저도 별로 갚고 싶지 않고, 갚을 능력도 없으며, 갚기를 기대받고 있지도 않다. 나는 거리를 갖고 싶다. 멀찍한 거리를 두고 싶다. 거리가 생기면 연민을 가질 수 있다. 엄마와 아빠는 각각 비극적 가족사를 안고 살아왔는데, 그 결과인지 우리 집도 원만히 굴러가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 억울한 건 외적인 문제 요소가 없다는 거다. 어렵게 고충을 털어놓아 봤자 철없이 배부른 소리밖에 안된다. 어렸을 때 얼마나 맞았는지 이야기해봐야 대한민국에 안 맞고 자란 사람이 어딨냐는 말 밖에 듣질 못한다. 자랑 섞인 재수 없는 소리.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혹은 문화적인 풍요를 누린다는 이유로 나는 삶의 고통에 대해 입 뻥긋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너무너무 부당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내가 대신 화를 내는 것도 지겹다. 원래도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은 맹세코 한순간도 꿈꿔본 적이 없고, 혹시라도 결혼을 한다면 나는 항상 발언권을 담보할 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해왔다. 그치만 엄마 아빠를 보면 아주 비등한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음에도 관계는 평등에서 한없이 동떨어져 있다. 가정이란 항상 비극을 안고 있으며, 그마저도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겨우 굴러간다. 아무도 내게 예외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에요 우리 이 정도면 정말 잘 자랐어요, 하이파이브해요. 라던 말이 떠올라서 자꾸 눈물이 난다. 다행히 아직 여덟 시 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야 하는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은 충분하다. 집에 일찍 들어온 내가 잘못이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2016.01.25
화풀이  (0) 2016.01.23
진짜 시시콜콜한 일상의 기록  (0) 2016.01.21
l'étranger  (0) 2016.01.19
어떻게 오늘은 또 오늘이네요  (4) 2016.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