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기

일기

2016. 1. 30. 03:45



 내게 우울과 불안은 아주 다르다. 우울은 조용하고, 불안은 산만하다. 우울할 땐 무감각하고, 불안할 땐 과민하다. 우울할 땐 아무 감흥 없이 기꺼이 죽고 싶어서 무섭고, 불안할 땐 죽을까 봐 무섭다. 어제는 잠에 들지 못하고, 창밖으로 어둠과 빛이 느릿느릿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을 봤다. 우주와 세상이 매정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초조하면서 무감각했다. 


 오늘은 초조하면서 무감각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나왔고, 억지로 운동을 했다. 카페에 앉아 당장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을 겨우 처리했다. 오늘은 아무것에도 감사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심지어는 자고 싶지도 않았다. '몸 둘 바를 모르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게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결정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적당히 책을 펴 놓고 앉아있었는데, 주위 테이블에선 하나같이 어려운 대화들을 했다. 신념, 정체성, 근대, 젠더, 초국가... 거기에 낯선 외국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들렸는데, 그 연대미상,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내게 너 그렇게 살 거니, 그게 맞는 길인 거니, 정말 니가 원하는 게 뭐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쉬어야 일도 할 수 있다고 되뇌어봤다. 맞는 말인데, 휴식마저도 일을 위한 예비 과정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헷갈렸다. 언제부터인지, 일하지 않는 시간엔 항상 얼마간 초조하다. 천천히 밥을 먹고,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고 영화도 보지만 충분히 집중할 수 없다. 수면마저도 이완의 기능을 잃은 것 같다. 심지어는 가만히 있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 어떤 컨텐츠도 소비하지 않고 맨손으로 조용히 있는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파서 앓아누울 때쯤 되어야만 외부 자극에서 온전히 벗어나진다. 뭐가 뭔지,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아ㅡ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밤마저도 환한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가벼운 옷을 입고, 어깨를 드러내고, 맨발로 신발을 신고 싶다. 여름엔 왠지 조금 더 몸으로 살게 되는 것 같다.


 부우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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