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 was the hard thing about grief and grieving. They spoke another language, and the words I knew always fell short of what I wanted them to say.

일기

2016. 2. 5. 23:40

 오늘은 X의 기일인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인은 2월 6일이었는데, 나는 당일에서야 급하게 연락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1일장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마도 2월 4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발인이 열두 시 반이었는데 나는 열 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를 받았다. 저희 언니랑 친하셨던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두 시간 내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여섯 명. 나보다 먼저 와있던 동아리 사람은 한 명, 언니랑 친했던 선배였다. 일하던 중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다고, 오렌지색 점퍼에 흰 운동화를 신고 민망해하고 있었다. 얼떨떨함을 공유하면서 화장장에 들어가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둘 다 사흘 전 같은 시간대에 이 언니로부터 똑같은 카톡 메세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라파덕이, 콜라병이 어쩌고하는 뜬금없는 퀴즈. 나는 술을 마시던 중이어서 그냥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답장했었고, 이 선배는 야근 중에 평소처럼 '꺼져 븅신아’라고 보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이 메세지를 받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건데, CPA를 준비하던 그 선배는 휴대폰을 수리센터에 맡겨놓던 중이라 의문의 카톡도, 갑작스러운 부고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장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니 곧 X의 영정사진이 올려진 까만색 관이 도착하고, X의 이름을 토해내는 곡소리가 들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얀 뼛가루가 단지에 옮겨졌다. 순식간이었다.


 1일장이었음을 알고 나서는 카톡 창에 떠있는 그 여러 줄짜리 퀴즈를 볼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였는지 멍한 표정으로 앞으론 절대 후배들에게 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술 한 번 사줄걸, 한 번을 못 사줬어, 하고 중얼거렸다. 내가 카톡에 뒤늦게 답하는 것이나, 이 선배가 욕을 하는 것이나 모두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괴로울 수밖에 없는 건, 우리 모두 이 언니가 늘어놓는 푸념을 들어주기 귀찮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X는 몇 달째인지 일의 지겨움과 힘듦, 남자친구와의 갈등에 대해 기회가 날 때마다 구구절절 토로했다. 뚜렷한 갈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이 언니가 항상 남자친구에게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배들은 술을 사주다, 지적을 하다 포기했고 후배인 나는 들어주다가, 조심스럽게 타박을 해보다가 포기했다. 시간은 계속 지나는데 문제는 심화되고 푸념도 그만큼 길어졌다.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고 여기 흑역사 하나 추가요ㅋㅋㅋㅋ’하며 술이나 같이 마시는 것이 내 일이었다. X는 나보다 술을 못 마시는데 항상 나보다 더 마셨다.


 X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내가 신입생일 때 동아리 방에서이다. 그때가 시험 기간이었나, 그랬는데 시시덕 놀고 있던 나와 동기들에게 아 시끄러워 진짜 정신 사납게 하고 짜증을 내던 목소리. 언니도 내 인상이 좋지 않았을 거고, 나도 첫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둘 다 술을 좋아해 자주 술자리에서 보다가 친해졌다. 기말고사 때는 스타벅스에다가 진을 치고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연극과 전시를 같이 보러 다녔다. 동아리방, 캠퍼스 곳곳의 앉을 구석들, 술과 커피, 전시회, 책, 진로 고민, 남자 선배들과는 갈 수 없는 우아한 식당, 화장품, 머리 스타일… 내게 X는 가장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났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화상통화를 하면서 원격으로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X에게는 동네 친구가 있었지만, 내게는 다른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같이 여행을 다녀온 것도 X가 처음이었다.


 어느 단추가 잘못 끼워진건지. 그 해 겨울 하루는 X가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고 나왔다. 살기 싫다, 힘들다를 달고 살던 중이어서 상황은 뻔해 보였는데, 그렇다고 자해까지 할 줄은 몰랐고, 그래서 나는 뭐라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위로를 해야 되나, 이건 아니라고 다그쳐야 하나. X는 상처가 심각한 건 아니라며 이 일 때문에 그래도 헤어진 남자친구가 달려왔다고 했다. 같이 응급실에 다녀오고, 집에도 같이 와서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아 언니 진짜 왜 그래요. 그러지 마요. 자해도 집착도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선 위기를 알리는 어떤 경고 벨이 울렸는데 남의 인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담도 권해보고, 운동도 권해봤지만 언니는 계속 전화를 걸고 문을 두드리고 결국에는 모진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상처를 냈다. X가 수렁에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지고 무뎌졌다.


 오늘은 자료 검색을 하다 무슨 검색어를 쳐서 그랬는지, '멀티플렉스에 나타나는 공간의 허상'을 주제로 한 논문을 마주쳤다. 이런 논문은 어느 학과에서 쓰는 걸까, 생각하다가 문득 예술학과에 다니던 X 생각이 났다. X는 졸업 즈음에 알바로 타교생의 논문을 써줬다고 했는데,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은 게 후회됐다. 미술관을 관두고 언니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형편이 허락질 않는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집안의 기대가 싫다고 징징대던 나는 얼굴이 화끈해져서 언니는 그깟 시험 금방 붙을 거란 말밖에 덧붙일 수 없었다. 싸이월드의 데이터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가벼움이 미덕인 것처럼 굴었던 것이 후회된다. 겨우 두 해 지났는데 기억은 벌써 희미해지고 있다. 언니의 내면 한 자락씩을 보여주던 글들이 그립다.


 성묘?를 갈까해서 사람들을 모아봤는데, 대부분은 답이 없었다. 결국 매번 같이 술 마시던 선배들 서너 명만 모이게 됐다. 위패 옆에 두고 오려고 무의미의 축제라는 책을 샀다. 제때 성의껏 응답하지 않아서 후회되다가, 인생 원래 무의미한 거라고 몰아붙이고 싶다가… 깨닫는 건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는 거다. 그냥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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