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한탄

일기

2016. 2. 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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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구실 후배가 쓴 연구의 논문 초고를 교수님이 단독으로 발표한다고 하시는데 어떡해야 되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유가 뭔지를 물었는데 대답은 우리 단과대의 특성상 교수가 학생과의 공동연구를 출판하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다' 였다고 했다. 그 친구는 교수와 같이 논문을 출간한 나의 경우를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더 할 수 있을지 물어보기도 하다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와중에 연구윤리까지 이야기가 나와 된통 혼나고('내가 그럼 지금 비윤리적이라는 거냐')... 결국은 포기했다. 초고를 뺏기느니 출간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다리만 거친 이야기였어도 과장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사자에게 듣는 말이 기가 차서, 정말로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무슨 일일까... 교수님이 왜 그러실까...하고 어설프게 위로했다.


 며칠 전에는 교수가 현재 나와 진행 중인 공동연구를 학회에서 발표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항상 해외 초청 교수급이나 전임교원 정도가 발표를 해왔고 학생이 참여한 사례는 전무하다, 여기 너의 이름이 올라간다면 교수님들이 이건 무슨 경우냐는 식으로 나오실 거라며 나의 이름을 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교내 산하 연구소의 작은 발표회고, 그러니까 그 자리가 내 이력서의 큰 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워낙 튀기 싫어하는 교수님의 심정도 이해가 가서 일단은 얼떨떨하게 '네...' 했다. 사실 '네' 말고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는 이게 왜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내게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들렸다. 전화를 얼른 끊고 싶은 마음밖엔 들지 않았다.


 문제의 이 연구는 해외에 있는 교수A가 설계하고, 내가 진행하고, 교수A와 내가 같이 분석한 연구이다. 통화한 교수B는 나의 지도교수라는 이유로 내가 하는 연구에는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연구가 크게 ㄱ) 설계, ㄴ) 자료수집, ㄷ) 분석과 해석 ㄹ) 논문 작성으로 나뉘고, 자료수집 과정이 다시 피험자를 모으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 데이터를 정리(코딩)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교수B가 피험자 모집에 1/6 정도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피험자는 세 그룹인데, 그중 한 그룹의 데이터를 모으는데 넉넉히 잡아 50%정도 기여했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내가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실험을 부탁할 수 있게 시간을 마련해줬고('나는 15분 정도 후에 들어갈 테니 먼저 들어가서 설명해'),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니 가급적 참여를 부탁합니다, 정도의 말을 했다. 학생들에게 개요와 절차를 설명하고, 참가를 부탁하고, 결과를 보면서 참가자들에게 다시 연락해 각종 빼먹은 부분의 완성을 부탁하는 것은 내 일이었다. 심지어 이 부분은 연구와 무관한 학과의 다른 선생님이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두 그룹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온전히 내 일이었다. 그러니 전체 과정에서 보자면 현재까지 교수B는 1/48 정도 기여했다. 지난번 연구로 미루어 봤을 때 이 숫자는 1/20까지도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이 연구는 교수A가 우리 학교에 제안해 성사됐다. 교수A가 보낸 제안서의 주제는 신기하게도 나와 연구주제가 매우 비슷했고, 더구나 나는 이 교수가 재직 중인 도시에 여행계획이 있었으므로 이메일을 주고받다 만나게 됐다. 교수B는 내게 학운이 따라준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뉘앙스가 마치 이 학운은 자신 덕분이며, 지도학생에게 이 기회를 '허락'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자신도 같이하는 연구인 걸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마지막으론 출국하는 내게 authorship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 오라고 당부했다. 내용은 한국의 정서상 교수라는 위치에서 어떤 연구에 참여하면 제1저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말을 꺼내자 교수A는 연구의 책임자도 자신이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자신인데 왜 제1저자가 그 교수가 되어야 하냐고 물었다. 너희 교수는 전공 분야가 뭐냐, 영어를 잘하느냐, 그건 논문을 직접 쓰겠다는 소리냐고 묻는데 얼굴을 붉히며 '한국의 정서'를 설명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교수A는 그렇게 해야만 공동연구가 성사된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승낙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대학원생인 너의 몫일 텐데, 너는 괜찮냐고 물어줬다. 저자가 둘인 연구에서 이름이 제일 앞에 있는 것과 저자가 셋인 연구에서 이름이 가운데 있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한국의 대학원생인 나는 이를 물어주는 것만도 놀랍고 감사했다.


 교수A는 다른 연구와 관련한 일정으로 올봄 한국을 방문한다. 이를 들은 교수B는 힘을 써 4월 중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교수A가 발표를 준비하고 발표를 진행하는데, 사회를 보는 교수B의 이름은 같이 올라가고 나의 이름은 빼야겠다는 것이 통화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교수A의 발표자료(슬라이드 혹은 발표문)의 우리말 번역과 질의응답의 통역을 내게 부탁했다. 연구소를 통해 사람을 쓸 수도 있지만 연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내가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나는 심술이 나서 하기 싫었다. 처음에는 4월이면 예심이 있는 달인데, 아무래도 여유가 부족할 것 같다고 해봤다. 교수B는 그럼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거냐며, 예심과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냥 간단한 건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그 때부턴 빈정이 상해서 못난 마음으로 기어이 거절의 뜻을 관철했다. 애초에 영어로 이뤄지는 발표인데, 참석하는 사람이라면 슬라이드에 쓰인 단어와 구 정도는 당연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일 거라고, 그리고 질의응답은 제가 실시간으로 통역을 할 만큼 영어가 자유롭지 않으며,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떨리는 부분도 크다고. 교수는 일단 알겠다고했다. 그래서 발표되는 연구의 저자는 교수A, 교수B인 것으로, 질의응답의 진행은 사회자인 교수B가 하는 것으로 통화는 마무리됐다.


나는 기꺼이 커피도 타고, 교수 연구실의 책 정리를 돕고, 액자를 맞추는 것과 같은 사적인 심부름을 하고, 교수의 영문 초록을 수정하고, 논문의 인용형식을 정리하고, 수업의 강의록을 만들고, 행정보고용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모두 큰 불만 없이 기꺼이 하고 있다. 동네 아저씨가 눈 치우는 것을 돕는 마음처럼, 가까운 웃어른인데 이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실제로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래, 논문에서 내 이름을 뺀다는 것도 아닌데 무슨 큰 대수냐, 하고 넘기려는데 마음이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이건 남의 일을 거들거나 이익을 조금 양보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권리를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학계에는 연구윤리가 있고, 원리와 원칙이 있는데 어떻게 해도 그것에 들어맞지 않았다. 내가 한 연구에 내 이름을 넣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실제로 이 일에 문제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고, 또 사실 이 일로 부딪치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 하지만 내게 닥친 이 상황과 나의 대처가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내 신념에 어긋난다는 것이 마음에 자꾸 남는다. 윤리적인 원칙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 항상 지켜야만 '원칙'이 된다는 것 나의 생각이다. 교수2는 상황에 맞추어 한 번 적당히 넘어간 규칙을 다음이라고 또 어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나는 또다시 침묵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튀고 싶지 않고, 체면을 차리고 싶고, 연구실적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닥쳤을 때 원칙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지 않는다는 보장은 이 사건으로 사라졌다(사실 이전에도 한 번 있었다. 별다른 참여를 하지 않은 교수B는 실제 연구책임자인 교수X을 밀어내고 교신저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논문을 작성한 나는 제1저자로 남았고... 교수들끼리 조정한 일이라는 믿지못할 말에 나는 침묵했다. 교수X는 제2저자가 됐고 나는 아직도 죄책감을 안고 산다). 나는 교수B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신뢰를 잃었다.


 자신의 원고를 지키기 위해 출간을 포기한 후배의 상황이 오늘에서야 크게 다가왔다. 그 친구는 후에 '얻을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교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당장 껄끄럽더라도 대화를 통해 자기 뜻을 확실히 전달하고, 부당한 것은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냥 '네...' 한마디 하고 끙끙 앓는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비겁함과 앞으로 다른 형태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부당함은 접어두더라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가 작게는 이 연구실과 단과대학, 크게는 대학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원생이 노동과 공로에 대해 마땅한 대가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있는 일이다. 실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대학이나 테뉴어를 딴 후 연구를 멈추는 교수들의 문제는 이 길의 초입에 선 대학원생이 손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대학원생이 마주치는 불의는 모두가 짚고 넘어간다면 개선될 수 있다. 학계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고상함...은 고사하고 상식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기성세대와 같이 무감각해지기 전에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수 있다. 나는 제일 아랫사람이지만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인데, '크지 않은' 부당함이므로 받아들인다는 선택으로 다른 대학원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연구를 발표할 때 학생의 이름을 넣지 않을 수 있다는 선례가 되어서, 후에 다른 학생을 설득할 때 쓰이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원리와 원칙은 거의 뜬구름과 같이 막연하고 이상적인 가치이다. 학위를 담보로 잡혔고, 정교수의 이름이 없이는 논문 게재가 불가능하고, 유학만 갈래도 추천서가 필요한 대학원생은 조직의 흐름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현실로 돌아오면, 고인 물 같은 학교 내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교수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다. 연구 내용에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크지 않더라도 무슨 일을 되게 하는 데에 전임교원의 이름이 필요한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다. 교수가 내게 마음 써주는 부분이 많은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박사도 아닌 석사과정 중의 연구실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 이번 발표는 더더욱 별일이 아니다. 교수에게 빚진 것이 없고, 사적인 인연(정)이 아니라 필요(성과)에 의해 이어진 관계라는 점에서 떳떳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신물이 올라오지만, 이게 후진 사회의 좁은 물이어서 그럴 것이라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 해외의 주류 대학에서도 부조리와 부당함이 만연하다면 미련없이 공부를 관둘 작정이다. 나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만연히 떠도는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며 경력을 쌓겠다고 버둥대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학과 사무실에는 학기마다 연구윤리와 관련한 책자가 내려온다. 교수들에게 한 부씩, 대학원생 교육용으로 한 묶음 더. 성희롱 방지 지침문서나... 뭐 각종 권고문을 발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학교 행정국은 학생과 교수 사이의 질서를 바로세우려고 노력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엔 단과대에서 설립 몇몇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각 학과에는 두달동안 주말을 포함해 매일 오전/오후 '관련 업무'를 맡을 shift가 할당됐다. 막무가내로 대학원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날 일을 갔다온 후배 말로는 책을 벽에 고정해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기념품을 나르고, 우편물을 포장하는 등의 단순하고 피곤한 노동을 시켰다고 했다. 우리과는 물론이고 다른 과에서도 뿔이 났다. 왜 대학원생의 expertise가 필요하지도 않은 단순 노동에 댓가 없이 봉사하길 요구하는 것이냐고. 내가 보기에도 이건 학부생에게 최저시급이라도 쥐어주고 시켜야하는 일이 맞았다. 우리과의 학과장은 아주 무심해서... 조교장이 대신 진상을 파악하고 다른 과 대표들과 함께 이의를 제기하러 내려갔는데 담당직원은 아주 미안한 얼굴로 자신도 위에서 시킨 일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죄송하지만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연신 사과했다고 한다. 약은 처신이든 정말이든 간에 행정국도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과의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 대신 강하게 항의를 해서 막노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다. 하지만 로비의 전시물을 4주간 지키는 것은 여전히 대학원생의 몫으로 남았다. 우리는 멍하니 로비의 책상에 앉아서 한나절씩 사람들이 전시물을 만지지 않도록 안내해야 했다. 물론 무급이었다.


 당시 행사의 다른 한 축은 대학원생의 학술제였다. 각 학과에서 대표가 두명씩 차출되어 두시간씩 세 차례의 회의를 가졌는데, 내용인 즉 행정국에서 대학원생들의 활발한 연구 교류를 위해 모든 과가 참여하는 학술제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학과가 참여하는 것을 가정으로 하고 회의가 진행됐다. 각종 어문학과와 역사, 철학, 심리학과를 통합해서 두 갈래의 주제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난제였는데, 각 과에서 발표를 할 학생과 토론을 맡을 학생 두 명씩이 또 할당되었다. 발표를 맡은 사람은 아무리 써둔 보고서나 출간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해도 50분에 맞추어 발표자료를 만들어 구성을 재정리, 준비하려면 최소 여섯시간은 투자해야 할 것이었다. 토론을 맡은 사람 역시 남의 연구를 읽고, 숙지해서 토론거리를 준비하려면 시간을 쏟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학장이라는 사람은 '보고서 뭐라도 써둔 것 있을 거 아니에요'라며 사람들을 떠밀었다.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야했는데, 당일에 가보니 이 학술제는 역시나 보여주기식, 단과대 차원의 실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행사였다. 각 학과의 참가자, 진행과 녹화를 맡은 행정직원을 빼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심지어는 영상 촬영과 홍보목적으로의 사용에 동의하길 강요받았다). 우리가 행사의 주체로 동원되고 받은 것은 회의 때 샌드위치 한 개, 학술제 때 뒤에 놓인 과자 몇 봉지였다. 행정국마저도 실적을 위해선 대학원생을 마음껏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종 윤리관련 교육문을 발행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