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말

일기

2016. 9. 23. 15:13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이 담배 피우러 가자시는데 

여친이 넘 예뻐서 끊었습니다! 라고 했어요 ㅋㅋ 

말해 놓고 내가 기분 좋아...


(지금 교무실에 선언했는데 여기 생활지도부라 

흡연 측정기랑 ㅋㅋㅋ거짓말 탐지기 있어요 

담배 걸리면 내 돈으로 회식하기로 ㅋㅋㅋㅋㅋㅋ 아으)


당신 기다리는 거 좋아요 

기다리면 오잖아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에요 

@@씨가 나한테 엄청 특별한 사람인가봐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점점 커져요 내 마음 속에서


아침에 황홀하게 예쁘던데 언제 그 모습 또 보여 줄래요?




9/21 오전의 기록. 


 우울만 토해낼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도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어색한 말이지만 요새는 틈틈이 행복하다. 어디서든 벽에 힘없이 기대서지 않고, 몸을 똑바로 펴고 머리를 가눌 기운이 생겼다. 어깨를 내리고 배를 단단히, 뒤통수는 뒤로 당기면 뭐든 맞닥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직장은 노답이고 유학은 까마득한데다 돈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릴 지경이지만 아니야, 괜찮아. 난 헤쳐나갈 수 있어. 그런 믿음이 솔솔. 아무 여파 없이 약을 끊은지 꽤 오래됐다.


 착하고 섹시한 사람이다. 마음껏 받으라며 내게 쏟아주는 마음이 진짜구나 믿기기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뭉클하다. 엉망이었던 집을 하루 밤새 놀라울만치 깔끔히 치우고, 스쳐가며 한 번 언급했던 맥주와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파이를 냉장고에 채워놓고 나를 기다린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녹았다. 기다리는 마음이 좋을 수 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거리 둘 줄만 알았던 내겐 낯선 일이었다. 어디든 입술 닿는 곳에 마음이 전해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품에 가두고 부드럽게 뜯는 기타도 쿵쿵쿵쿵, 자신있게 누르는 건반도 아주 달았다. 


 화장하지 않아도, 차려입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게 있는 우울이 언젠가 도지더라도 자길 너무 멀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 기다릴 테니 숨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만 정신차리면 된다. 불안한 마음 다스리느라 홀로 보내는 시간에도 내게 와닿는 말들을 차곡차곡 쓰는 고마운 사람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꽉 차서 말문이 막힌다. 덜컥 자버린 것도, 덥썩 좋아진 것도 신기하게 다 내게 '맞는' 일, 옳은 방향이라는 느낌이다.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신기하게, 모든게 처음이고 생생한 연애를 하고 있다. 나의 행복은 아주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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