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fant gâté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간다. 평창동 입구, 저택들 사이에 은근히 숨어있는 조용한 곳이다. 우리는 잠시 침상에 둘러서서 할머니 손을 잡고 말을 붙인다. 목소리를 내는 건 물론이고, 눈을 마주치지도 손발을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할머니. 자식을 알아보시는지, 언어 능력이 온전하신지, 시간 감각이 있으신지, 시청각이 살아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아빠는 마치 아기를 대하듯 한 층 높은 어조로 간단한 말들을 여러 번 반복한다. 어머니 잘 지냈어? 잘 지내셨죠? 으응? 잘 지냈지? 저는 아버지 보러 갔다 왔어요. 지난 주에 아버지 보러 갔다 왔어. 아버지 보러 현충원에 다녀 왔어요. 막내 보고싶지? 미국에 있는 막내 보고싶어? 막내 오라고 할까?

 아빠는 금방 지쳐 한숨을 내쉬며 복도로 나가고, 우리는 어색하게 우두커니 둘러서서 손을 잠시 어루만지다가 할머니 저희 다음 주에 또 올게요, 하고 나오는 게 일이다. 건물에 머무는 건 이십분 남짓, 아무도 외투조차 벗지 않는다. 나서기 전 방을 둘러볼 때면 항상 맞은 편 침대의 할머니가 침대에 일어나 앉아 밥을 천천히 떠 드시고 계신다. 하지만 눈을 마주친 적도, 말소리도 수저드는 소리도 들은 적이 없어 어쩐지 사람같이 느껴지질 않는다. 사람과는 다른 속도와 호흡을 가진 존재들... 요양원 방방에 미동없이 누워있는 노인들이 마치 식물같다고 생각했다. 사그라진 이파리에 물방울 조금씩을 겨우 얹고 있는 풀들. 호젓한 동네, 손이 닿지 않는 그늘에 가까스로 피어있는 풀들. 요양원은 묘지도 마을도 아닌 어떤 다른 세계인 느낌이다. 삶과 죽음 사이, 정확히는 삶보다 죽음에 훨씬 가까이에 있는 어떤 숨은 공간. 매주 일요일 나는 아주 잠시 죽음의 문턱을 밟고, 죽음의 살갗을 만지는 것만 같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15년만에 할머니를 뵈었을 때의 인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닦고 머리를 긁는 것조차 할 수 없고, 몇 번이고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전달하려 애를 쓰지만 나오는 것은 형태없는 기식음 뿐인 상태... 몸의 왼쪽 반엔 갑작스런 마비가 왔고, 오른쪽 반은 침대에 묶이다시피 한 상태였다. 팔다리의 '운동이 많다'는 이유였다. 내겐 주위 간호사들이 쓰는 '운동이 많다'라는 표현이 기괴했다. (할머니가) 많이 움직이시는데 멍이 들거나 다칠 수 있어서요,와 같은 자연스런 말을 두고 마치 실험실의 기계장치를 설명하듯 '(손발의) 운동이 많으세요'라고 했다. 주어가 할머니(사람)가 아니라 운동(움직임)인 것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 손발의 움직임은 더이상 할머니의 의도나 고통, 표현 등과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늙은 몸에 갇혀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는 할머니, 기계적으로 말하고 움직이는 간호사들, 그리고 그냥 어쩔 줄을 모르는 할머니의 아들, 며느리, 손자들까지. 그 광경이 너무나 비참해서 숨이 막혔다.

 며칠째 갈비, 삼겹살같은 게 먹고싶던 참이었는데 요양원을 나서면서는 그 식욕이 왠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어코 고기를 찾아 먹었다. 잘 모르겠는 무엇엔가 항의하는 마음으로 벌건 생고기를 불판에 올려 치덕치덕 익히고 이로 자근자근 씹어 삼켰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에게 달려가 온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껴안고 울었다. 그 울음은 사실 또 다른 많은 것들의 합창이지만 일단은, 적당히 뒤섞인 채로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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