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드립

일기

2012. 7. 31. 04:18




=

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이토스는 현실을 대립쌍의 집합으로 파악했다. "같은 강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언제나 다른 강물이 흐른다", "우리는 동일한 강에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그러지 못한다. 우리는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지 않다" 같은 말들. 현실과 사람은 이렇게 나뉘어 있고 자체적으로 모순된다.



-

2012년 여름, 나의 연애에서는 자기표현과 농담이 대립한다. 나는 자기표현이 강하고 그사람은 시덥잖은 농담을 던진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다소 무거운 것, 말장난을 한다는 것은 가벼운 것. 무거운 것은 과한 것, 가벼운 것은 미미한 것. 과한 것을 참아야겠다는 다짐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미미한 것을 자제해달라는 말은 얼마나 초라하고 구차한가. 서운함을 가득 입에 물고 있지만, 내뱉을 수가 없다. 


"왜 그래?"

"몰라."

"뭘 몰라?"

"...몰라."


나는 뭐라 딱 떨어지지 않는 감성마저도 통하는 느낌, 상대방이 내 기분과 감상들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느낌, 혹은 짐작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받아주고 다독여주는 느낌을 못 받아 속상한 반면 그사람은 내가 사소한 말들에 일일히 의미를 부여하고 시시콜콜한 것들도 알고싶어 하는 것, 순간순간의 감정을 낱낱이 설명하는게 과해서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농담은? 유쾌한 분위기와 웃음. 자기고백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문제가 되는 이유는 둘 다 정도가 지나쳐서? 혹은 나는 유머에 대한 센스가 없고 그사람은 '들뜨다'와 '기분이 좋다'의 차이를 느끼지 못해서? 오늘도 미루어 짐작만 해본다. 



=

그러나 대립이 최종적인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대립을 더욱 깊이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립의 갈래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삶과 죽음이 내적으로 서로 닿아있는 것 처럼. 그래서 어떤 증인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물건들이 "대립관계를 통해 서로 결합된다"라고 가르쳤다고 말한다. 대립들의 상호연관성. 지속적인 통일성?



-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농담과 자기표현을 어떻게 관계지어야 할까? 나의 연애는 이 대립관계를 통해 균열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어떻게 결합할 수 있다는 걸까? 


Sein 있음.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음. 이 관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립하는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어떤 '전체'... 


사랑도대체 이 모순을 어떻게 해야 할지.



-

커피 한잔 따라놓고 멍하니 머리 속을 헤집으며 실컷 사변하다 현실로 돌아오니 이 무슨 현학적 말장난인지, 그냥 술·살·달거리 스트레스에서 오는 예민함에 타이밍 좋게 "다이어트 한다며ㅋㅋㅋ""절대 금주한다더니ㅋㅋㅋ""커피 중독 아냐?ㅋㅋㅋ" 같은 말들이 겹쳐 짜증을 엉뚱한 곳에 분출한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치만 팍팍한 세상에서 마음 붙일 곳 하나 찾는 게 연애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변명으로, 책으로,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해소 해야되는 이 상황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  (0) 2012.10.05
시시콜콜한 이야기  (1) 2012.09.26
비 창  (0) 2012.07.05
아쿠아리움, 딤섬, 섹스.  (0) 2012.07.02
Luise Rinser/Fur sie.  (0) 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