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bo da Roca

일기

2012. 10. 11. 03:01





꿈을 길게 꾼 것 같다. 삐죽삐죽한 머리카락, 차가운 향수냄새, 낡은 실팔찌... 호까곶에서 얼결에 같이 히치하이킹을 한 너, 밤 늦게 내 숙소에 체크인을 한 너였던 것 같다. 데킬라 한 병을 비우고 I feel a lot better, but still pretty bad라고 말하던 너. 같이 방으로 가자는 말, 각자의 방으로 가자는 말, 아니면 모호하게 이제 그만 일어나자는 말 사이에서 한참 고민을 하다 선택을 포기하고 그냥 잠이 들 때까지 마시기로 한다는 너. 술을 마시는 내내 이마 위에서 흔들리던 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몇 번인가 만져보고 너의 아이팟을 틀고 누운 나. 




이어폰에서는 몽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I'll put a spell on you_you'll fall asleep and I'll put a spell on you_and when I wake you I'll be the first thing you see_and you'll realise that you love me.




꿈이었다. 혹은 감정 통제가 안되는 취중이었다. 노스름한 가로등이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비치는 탓에 마치 달빛 밝은 밤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시트는 살짝 까끌하지만 매트리스가 꽤 편안했다. 너는 영화에서처럼, 바다에서 표류하다 어느 해안가에 밀려온 사람의 자세로 팔을 한쪽씩 위아래로 힘없이 늘어트리고 잤다. 가늘고 긴 손 끝과 손 날에 굳은 살이 조금씩 박여있었다. 네가 눈을 떴다. 


"To me, you're strange and you're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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