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fant gâté

일기

132개 발견

 억지로 몸을 끌고 헬스장에 올라갔으나 도저히 운동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으며 주륵주륵 울다가 바디 오일을 바르면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붉은색 섀도우를 눈두덩이에 문지르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을 쐬며 앉아있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광장에 혼자 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울할 때는 별 거에 다 용기가 필요한데, 이런 순간엔 계속 몸을 움직이고 발을 내딛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맘편히 햇빛을 쐬는게 어려운 일이라 슬펐다.


 우울하다는 건 숨길 거리도 내세울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통은 그냥 조용히 있는다. 그런데 오늘은 ‘요새도 약 먹니? 니 힘으로 이겨내야지’ 라는 말을 들었다. 가끔씩 어른들은 걱정이랍시고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표정 관리가 되질 않는다. 기분이 상하고 헛웃음이 나는데, 억지로 힘을 쥐어짜 맞장구치고 겨우 상황을 넘긴다. 저런 말들은 상처가 되어서, 똑같이 상대방을 할퀴고 싶게 만든다.

이런 정도의 몰이해는 감당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은 솔직할 수 있는게 몸밖에 없거든요. 외관이 마치 허름한 창고처럼 생긴, 비밀스런 바에서 X가 잠깐 눈을 저 멀리 바깥으로 돌리며 한 말. 우울한 사람들은 몸에 예민하다, 몸에 집착한다. 그 말이 나를 콕콕 찔러서 적당히 흘려 보낼 수가 없었다. X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CG처리한 영상처럼, 느린 화면에서 아주 선명한 빛으로 움직일 때가 많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옷만 서둘러 입고 나왔다. 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잡는 길가에서도 이 대사는 머리속에서 계속 깜빡였다. 뇌에 온통 모래 먼지가 낀 것처럼, 배에는 풍선이 들어차 숨통을 막고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택시를 타서는 머리 가누기를 포기하고 허벅지 뒷쪽...부터 몸의 근육통을 샅샅이 찾아내고 있으니 X의 대사가 또 날 콕콕 찔렀다. 내가 필사적으로 마음의 일들을 회피하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정말로, 그제서야 깨달았다.



있는 힘껏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이어폰으로 로드리게즈가 속삭이길: 

"Don't try to charm me with your manner of dress, cause monkey in silk, is a monkey no less." 

곧이은 곡에선:

 "You change your mind so many times, I wonder if, you have a mind, at all." 

아니 다들 어쩜 이렇게 신랄한 거지.​



"God, tell us the reason -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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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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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에서 흙먼지 냄새가 난다. 어릴적 체육시간 운동장에서 모래 먼지를 한참 뒤집어 쓰면 머리카락과 손에서 나던 냄새. 이제는 흙바닥을 딛을 일도 없는데, 중국 사람들 때문에 이맘땐 항상 문 밖을 나서자마자 쿱쿱한 먼지 구름에 푹 파묻히는 것 같다. 바람이라도 살갗을 스치면 추행당하는 것처럼 불쾌하다. 중국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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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간다. 평창동 입구, 저택들 사이에 은근히 숨어있는 조용한 곳이다. 우리는 잠시 침상에 둘러서서 할머니 손을 잡고 말을 붙인다. 목소리를 내는 건 물론이고, 눈을 마주치지도 손발을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할머니. 자식을 알아보시는지, 언어 능력이 온전하신지, 시간 감각이 있으신지, 시청각이 살아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아빠는 마치 아기를 대하듯 한 층 높은 어조로 간단한 말들을 여러 번 반복한다. 어머니 잘 지냈어? 잘 지내셨죠? 으응? 잘 지냈지? 저는 아버지 보러 갔다 왔어요. 지난 주에 아버지 보러 갔다 왔어. 아버지 보러 현충원에 다녀 왔어요. 막내 보고싶지? 미국에 있는 막내 보고싶어? 막내 오라고 할까?

 아빠는 금방 지쳐 한숨을 내쉬며 복도로 나가고, 우리는 어색하게 우두커니 둘러서서 손을 잠시 어루만지다가 할머니 저희 다음 주에 또 올게요, 하고 나오는 게 일이다. 건물에 머무는 건 이십분 남짓, 아무도 외투조차 벗지 않는다. 나서기 전 방을 둘러볼 때면 항상 맞은 편 침대의 할머니가 침대에 일어나 앉아 밥을 천천히 떠 드시고 계신다. 하지만 눈을 마주친 적도, 말소리도 수저드는 소리도 들은 적이 없어 어쩐지 사람같이 느껴지질 않는다. 사람과는 다른 속도와 호흡을 가진 존재들... 요양원 방방에 미동없이 누워있는 노인들이 마치 식물같다고 생각했다. 사그라진 이파리에 물방울 조금씩을 겨우 얹고 있는 풀들. 호젓한 동네, 손이 닿지 않는 그늘에 가까스로 피어있는 풀들. 요양원은 묘지도 마을도 아닌 어떤 다른 세계인 느낌이다. 삶과 죽음 사이, 정확히는 삶보다 죽음에 훨씬 가까이에 있는 어떤 숨은 공간. 매주 일요일 나는 아주 잠시 죽음의 문턱을 밟고, 죽음의 살갗을 만지는 것만 같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15년만에 할머니를 뵈었을 때의 인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닦고 머리를 긁는 것조차 할 수 없고, 몇 번이고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전달하려 애를 쓰지만 나오는 것은 형태없는 기식음 뿐인 상태... 몸의 왼쪽 반엔 갑작스런 마비가 왔고, 오른쪽 반은 침대에 묶이다시피 한 상태였다. 팔다리의 '운동이 많다'는 이유였다. 내겐 주위 간호사들이 쓰는 '운동이 많다'라는 표현이 기괴했다. (할머니가) 많이 움직이시는데 멍이 들거나 다칠 수 있어서요,와 같은 자연스런 말을 두고 마치 실험실의 기계장치를 설명하듯 '(손발의) 운동이 많으세요'라고 했다. 주어가 할머니(사람)가 아니라 운동(움직임)인 것이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 손발의 움직임은 더이상 할머니의 의도나 고통, 표현 등과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늙은 몸에 갇혀 움직일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는 할머니, 기계적으로 말하고 움직이는 간호사들, 그리고 그냥 어쩔 줄을 모르는 할머니의 아들, 며느리, 손자들까지. 그 광경이 너무나 비참해서 숨이 막혔다.

 며칠째 갈비, 삼겹살같은 게 먹고싶던 참이었는데 요양원을 나서면서는 그 식욕이 왠지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어코 고기를 찾아 먹었다. 잘 모르겠는 무엇엔가 항의하는 마음으로 벌건 생고기를 불판에 올려 치덕치덕 익히고 이로 자근자근 씹어 삼켰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에게 달려가 온몸 구석구석을 만지고 껴안고 울었다. 그 울음은 사실 또 다른 많은 것들의 합창이지만 일단은, 적당히 뒤섞인 채로 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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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교무실 선생님들이 담배 피우러 가자시는데 

여친이 넘 예뻐서 끊었습니다! 라고 했어요 ㅋㅋ 

말해 놓고 내가 기분 좋아...


(지금 교무실에 선언했는데 여기 생활지도부라 

흡연 측정기랑 ㅋㅋㅋ거짓말 탐지기 있어요 

담배 걸리면 내 돈으로 회식하기로 ㅋㅋㅋㅋㅋㅋ 아으)


당신 기다리는 거 좋아요 

기다리면 오잖아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에요 

@@씨가 나한테 엄청 특별한 사람인가봐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점점 커져요 내 마음 속에서


아침에 황홀하게 예쁘던데 언제 그 모습 또 보여 줄래요?




9/21 오전의 기록. 


 우울만 토해낼 것이 아니라 좋은 마음도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어색한 말이지만 요새는 틈틈이 행복하다. 어디서든 벽에 힘없이 기대서지 않고, 몸을 똑바로 펴고 머리를 가눌 기운이 생겼다. 어깨를 내리고 배를 단단히, 뒤통수는 뒤로 당기면 뭐든 맞닥뜨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직장은 노답이고 유학은 까마득한데다 돈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릴 지경이지만 아니야, 괜찮아. 난 헤쳐나갈 수 있어. 그런 믿음이 솔솔. 아무 여파 없이 약을 끊은지 꽤 오래됐다.


 착하고 섹시한 사람이다. 마음껏 받으라며 내게 쏟아주는 마음이 진짜구나 믿기기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뭉클하다. 엉망이었던 집을 하루 밤새 놀라울만치 깔끔히 치우고, 스쳐가며 한 번 언급했던 맥주와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파이를 냉장고에 채워놓고 나를 기다린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녹았다. 기다리는 마음이 좋을 수 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거리 둘 줄만 알았던 내겐 낯선 일이었다. 어디든 입술 닿는 곳에 마음이 전해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품에 가두고 부드럽게 뜯는 기타도 쿵쿵쿵쿵, 자신있게 누르는 건반도 아주 달았다. 


 화장하지 않아도, 차려입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게 있는 우울이 언젠가 도지더라도 자길 너무 멀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 기다릴 테니 숨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나만 정신차리면 된다. 불안한 마음 다스리느라 홀로 보내는 시간에도 내게 와닿는 말들을 차곡차곡 쓰는 고마운 사람이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꽉 차서 말문이 막힌다. 덜컥 자버린 것도, 덥썩 좋아진 것도 신기하게 다 내게 '맞는' 일, 옳은 방향이라는 느낌이다. 어린 나이가 아닌데도 신기하게, 모든게 처음이고 생생한 연애를 하고 있다. 나의 행복은 아주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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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14:14 - oui?

Two Studies for a Self-Portrait, Francis Bacon



출근길, 매번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선다. 100분 정도를 졸다가, 걷다가, 무료해하다가 사무실에 도착. 매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서부터 사무실을 나서는 일곱시까지는 무려 열두시간이다. 매일 온종일을 똑같은 곳에서 소비하는게 기괴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내 삶은 언제 살라는 말이지.


점심시간. 밥 생각도 없고 운동도 안 내켰다. 과자 하나 까먹고 잠이나 잘 생각으로 소파 근처를 기웃거렸는데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책상에 앉아, 뜬금없이 떠오른 모네의 Le Havre 그림들을 찾아봤다.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다 찔끔 울었다. 무기력하고 싫다. 엉망진창이다.


오후엔 꼭대기 층에 올라가 마사지를 받았다. 여기선 근육을 누르는 느낌이 아니고 생소하게, 뼈 위에 붙은 것들을 흔들흔들 미는 느낌. 계속 도가니가 생각나다가 나중엔 간지러웠다. 몸이 자꾸 움찔거려서 부끄러웠다. 목 뒤로 내 머리카락을 서툴게 쓸어 넘기는 손짓에서 여기 다시 오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느낌-가다. 느낌-가득하다. 느낌-갑갑하다. 느낌-강하다. 느낌-거칠다. 느낌-견고하다. 느낌-과하다. 느낌-괜찮다. 느낌-구겨지다. 느낌-길다. 느낌-깊다. 느낌-까칠하다. 느낌-깨끗하다. 느낌-끌리다. 느낌-끼다. 느낌-나다. 꼿꼿이 앉아 정제되지 않은 엔트리를 멍하니 읽는데 왠지 느낌-야하다.


해가 지고 느지막이 도착한 동아리 OB 술자리엔, 내 맞은편에 앉아 입은 남들을 따라 웃지만 굳은 눈으로 홀낏홀낏 내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 있었다. 지난 봄, 술에 곯아떨어진 나를 밤새 못살게 굴었던 더러운 새끼. 떨리는 손으로 내게 따르는 술을 비웃는 마음으로 연거푸 들이켰다.


우습다. 화도 나지 않고 우울하지도 않다. 마음은 무감각한데 이상하게 몸이 과민했다. 홍대의 요란한 불빛, 텁텁한 바람, 사람들의 말소리, 거리에 섞인 음식, 쓰레기 냄새 등 온갖 자극이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혼자 처음 가는 바에 들어가 앉았다. 천천히 세 잔을 마셨다. 


기쁨이, 초록이처럼 동화에 나올법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됐다. 따뜻한 낯으로 내 자리를 마련해주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우울병 환자예요, 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마티니를 안주삼아 진을 마셨다. 술로 입을 막았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구든 금방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지 않았다. 숙취는 없는데 오래도록 술이 깨질 않았다. 아, 덥썩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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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커피를 쏟았다. 그나마 카펫에 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책상 유리 상판 아래로 커피가 흘러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검색해보니 유리를 들어내고 닦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는데,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각종 집기를 다 내려놓는 행동이 너무 튈 것 같아서 가만있는 중이다. 아... ㄴ메야쟈바니캐티재내내냐냐ㅑ빠ㅏㅏ

친구는 Korean zombie workforce의 일원이 된 기분이 어떻냐고 묻지만, 내가 맡은 일은 아주 사소하고 적다. 그저께는 회사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가 무엇인지 아주 꼼꼼히 검색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고(일단 통신비 지원을 받아 핸드폰을 바꿨다. 내년 봄에는 어학 시험 지원비로 DALF를 볼 생각이다), 어제는 집에서 가져온 맥 키보드를 회사 윈도우 컴퓨터에 연결해 키 매핑을 하는 걸로 두어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출근하자마자 헬스장으로 올라가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다음주부턴 일인용 소파, 흔들 의자에서 낮잠을 자도 될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사무실, 빌딩의 환경이 굉장히 좋다. 인터넷에서 종종 올라오는 IT 회사처럼 곳곳에 쉼터가 있고 쾌적하다. 열 발자국 거리에 온갖 간식거리가 가득 차있는 캐비넷과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이 있다. 반바지에 슬리퍼차림,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해 아침 에스프레소를 양껏 마시고, 쉬엄쉬엄 일하는 중간에 개인적인 자료조사를 하다 여섯시 반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8시께부터는 널찍한 카페테리아에서 공부. 월급이 거지같으니 주는 만큼만 일하고,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겠단 마음이다.

이미 입사전에 연봉 협상과정에서 빈정이 잔뜩 상했었는데, 들어와서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간에도 연봉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같은 직무, 직위라도 이전 회사에서의 연봉을 기준으로 조금 올려주는게 회사의 방식이라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온 사람의 경우는 여전히 쥐꼬리만한, 대기업에서 일하다 온 사람은 두둑한 연봉 오퍼를 받는다고 한다. 말은 '오퍼'지만 여기에 협상의 여지는 없다. 알바로 일하던 출판사에서 일여년간 급여를 받은 기록이 있는 나는, 그때의 급여수준이 기준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게 되었지만, 사실 받는 돈은 작은 소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 

입사전, 큰 무역 회사의 외국인 임원 통역직을 두고 끝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연봉이 1500만원 가량 높았고, 포멀한 환경에서 영어를 계속 쓴다는 것도 학회 발표와 유학 인터뷰를 앞둔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단점이라면 소속이 대기업이 아닌 파견직이라는 것과 강한 업무강도, 보수적인 기업문화. 실없는 이야기지만 매일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고 뭔가 차가운 도시의 '커리어 우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생계를 꾸려야 할 만큼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니, 연봉과 겉멋으로 선택할 순 없다는 생각에 이곳을 선택했다. 그치만 쥐꼬리같은 급여는 자존감에 상처가 되어서 흐려지질 않는다. 2주가 된 지금도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한다. 직급이 모두 통일되어있는 수평적 구조인데도, 제일 하위 계급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자주 가는 술집의 이벤트 박스에 괜시리 당당하게 명함을 넣었다. 둥글고 예쁜 명함이 톡 떨어지는 순간이 눈에 오래 남았다. 나무 창틀 위에 놓인 투명하고 예쁜 유리 상자. 향긋한 초의 불빛을 쐬고있는 상자 안의 번듯한 명함들. 아니,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렇게는 아무것도 안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멋있는 사무실을 쏘아다니며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돼, 흡족하게 웃을 일이 아니야, 라는 생각. 열등감을 그런식으로 다루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길을 찾아야하는데, 나는 아무 것에도 전념하지 않고 있다. 연구계획서, GRE는 커녕 토플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하버드, MIT와 같은 탑 연구실만 골라 인터넷 쇼핑하듯 장바구니에 담고있다. 일을 계속 하든 유학을 가든 지금의 경험을 잘 포장하려면 팀의 프로젝트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고 내 나름대로 정리해야 하는데 '내가 돈을 이만큼 받으면서 여기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나, 인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다.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도 있는 일이고, 그래야 배우는 것이 있는 일인데 나는 아주 소극적으로 튜닝 작업만 하고 있다.


그치만 일단 오늘은 산책삼아 빌딩을 탐방하며 퇴근시간을 기다려야겠다. 프로그래밍을 공부해 볼걸, 내가 개발자였다면 어땠을까 등의 공상으로 도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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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두 시 반, 뛰는듯한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오다 보니 얼마 전 본 맹수들의 사냥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들개 무리에게 추격당하는 물소가 자신은 아직 체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달리는 와중에 쿵쿵 과한 점프를 하는 모습. 비슷하게, 팔다리를 휘저어가며 있는 힘껏 걷는 내 모습이 나는 취하지 않았다, 기운차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다 곧 서글퍼졌다. 


 사치스러운 생활, 카드값을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맡고 나니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그룹 과외와 번역을 시작했고, 공동 프로젝트는 국제 학회를 앞두고 가장 바쁜 시점에 다다랐다. 게다가 졸업 논문의 본심이 며칠 남지 않은 이 와중에 주 5회 운동과 꾸준한 술자리를 고집하고 있다. 공부와 일, 여가 사이사이의 전환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무엇이 됐든, 뒤돌아 앉자마자 바로 주어진 과제에 몰입해야만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 잠깐 만났던 사람은 그래서 정리했다.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는데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처음 만나서 호감을 확인하고, 웃고, 대화하고, 자고, 설렘이 시드는 관계의 흥망성쇠가 순식간에 압축적으로 지나갔다. 


 가볍고 덧없기로 비슷한 관계가 앞뒤로 몇 번 더 되풀이되는 동안 초콜렛을 까먹는 기분이었다. 그냥 재미있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달콤하니 들뜨는 기분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좋았는데 어제는 내 머리 위의 낯선 손, 그리고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에서 문득 환멸을 느꼈다. 이 말과 손이 분명한 반복이었는데,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이 영화인지 꿈인지 잠깐 만났던 누군가인지 알 수 없었다. 환멸이 몸을 짓눌러서 말없이 숨만 몰아 내쉬었다. 그 후론 공사, 친소의 경계없이 모든 관계가 동물들의 사냥으로 보인다. 우습고 가소로우면서 측은하다. 아무것도 어렵진 않은데, 피로하다. 그 안에서 24시간 여자로 살고 있다. 내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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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0 13:57 - oui?



 논문을 내고 나면 일단 심사평이 나올 때까진 한가해진다. 관둘까, 정말 관두고 학위논문 과정만 해외에서 다시 할까 고민했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걸 깨닫고 엇나가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논문을 해치웠다. 할 일이 눈덩이처럼 굴러오면서 배로 커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은 그냥 일이고. 나는 의미와 방향을 잃은 느낌이다. 멍청ㅡ하게 살고있다. 유학 준비를 해야할 지, 플랜B를 준비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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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구실 후배가 쓴 연구의 논문 초고를 교수님이 단독으로 발표한다고 하시는데 어떡해야 되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확실히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유가 뭔지를 물었는데 대답은 우리 단과대의 특성상 교수가 학생과의 공동연구를 출판하는 것은 '적절하지가 않다' 였다고 했다. 그 친구는 교수와 같이 논문을 출간한 나의 경우를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더 할 수 있을지 물어보기도 하다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와중에 연구윤리까지 이야기가 나와 된통 혼나고('내가 그럼 지금 비윤리적이라는 거냐')... 결국은 포기했다. 초고를 뺏기느니 출간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다리만 거친 이야기였어도 과장이 있을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당사자에게 듣는 말이 기가 차서, 정말로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무슨 일일까... 교수님이 왜 그러실까...하고 어설프게 위로했다.


 며칠 전에는 교수가 현재 나와 진행 중인 공동연구를 학회에서 발표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항상 해외 초청 교수급이나 전임교원 정도가 발표를 해왔고 학생이 참여한 사례는 전무하다, 여기 너의 이름이 올라간다면 교수님들이 이건 무슨 경우냐는 식으로 나오실 거라며 나의 이름을 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교내 산하 연구소의 작은 발표회고, 그러니까 그 자리가 내 이력서의 큰 힘이 되는 것도 아니고 워낙 튀기 싫어하는 교수님의 심정도 이해가 가서 일단은 얼떨떨하게 '네...' 했다. 사실 '네' 말고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교수는 이게 왜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 한참 설명했다. 내게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들렸다. 전화를 얼른 끊고 싶은 마음밖엔 들지 않았다.


 문제의 이 연구는 해외에 있는 교수A가 설계하고, 내가 진행하고, 교수A와 내가 같이 분석한 연구이다. 통화한 교수B는 나의 지도교수라는 이유로 내가 하는 연구에는 모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연구가 크게 ㄱ) 설계, ㄴ) 자료수집, ㄷ) 분석과 해석 ㄹ) 논문 작성으로 나뉘고, 자료수집 과정이 다시 피험자를 모으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 데이터를 정리(코딩)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교수B가 피험자 모집에 1/6 정도 관여했다고 생각한다. 피험자는 세 그룹인데, 그중 한 그룹의 데이터를 모으는데 넉넉히 잡아 50%정도 기여했다. 자신의 수업시간에 내가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실험을 부탁할 수 있게 시간을 마련해줬고('나는 15분 정도 후에 들어갈 테니 먼저 들어가서 설명해'), 수업 중에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니 가급적 참여를 부탁합니다, 정도의 말을 했다. 학생들에게 개요와 절차를 설명하고, 참가를 부탁하고, 결과를 보면서 참가자들에게 다시 연락해 각종 빼먹은 부분의 완성을 부탁하는 것은 내 일이었다. 심지어 이 부분은 연구와 무관한 학과의 다른 선생님이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두 그룹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은 온전히 내 일이었다. 그러니 전체 과정에서 보자면 현재까지 교수B는 1/48 정도 기여했다. 지난번 연구로 미루어 봤을 때 이 숫자는 1/20까지도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


이 연구는 교수A가 우리 학교에 제안해 성사됐다. 교수A가 보낸 제안서의 주제는 신기하게도 나와 연구주제가 매우 비슷했고, 더구나 나는 이 교수가 재직 중인 도시에 여행계획이 있었으므로 이메일을 주고받다 만나게 됐다. 교수B는 내게 학운이 따라준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뉘앙스가 마치 이 학운은 자신 덕분이며, 지도학생에게 이 기회를 '허락'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자신도 같이하는 연구인 걸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마지막으론 출국하는 내게 authorship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 오라고 당부했다. 내용은 한국의 정서상 교수라는 위치에서 어떤 연구에 참여하면 제1저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말을 꺼내자 교수A는 연구의 책임자도 자신이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자신인데 왜 제1저자가 그 교수가 되어야 하냐고 물었다. 너희 교수는 전공 분야가 뭐냐, 영어를 잘하느냐, 그건 논문을 직접 쓰겠다는 소리냐고 묻는데 얼굴을 붉히며 '한국의 정서'를 설명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교수A는 그렇게 해야만 공동연구가 성사된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승낙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대학원생인 너의 몫일 텐데, 너는 괜찮냐고 물어줬다. 저자가 둘인 연구에서 이름이 제일 앞에 있는 것과 저자가 셋인 연구에서 이름이 가운데 있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한국의 대학원생인 나는 이를 물어주는 것만도 놀랍고 감사했다.


 교수A는 다른 연구와 관련한 일정으로 올봄 한국을 방문한다. 이를 들은 교수B는 힘을 써 4월 중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래서 교수A가 발표를 준비하고 발표를 진행하는데, 사회를 보는 교수B의 이름은 같이 올라가고 나의 이름은 빼야겠다는 것이 통화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교수A의 발표자료(슬라이드 혹은 발표문)의 우리말 번역과 질의응답의 통역을 내게 부탁했다. 연구소를 통해 사람을 쓸 수도 있지만 연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 내가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나는 심술이 나서 하기 싫었다. 처음에는 4월이면 예심이 있는 달인데, 아무래도 여유가 부족할 것 같다고 해봤다. 교수B는 그럼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거냐며, 예심과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냥 간단한 건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그 때부턴 빈정이 상해서 못난 마음으로 기어이 거절의 뜻을 관철했다. 애초에 영어로 이뤄지는 발표인데, 참석하는 사람이라면 슬라이드에 쓰인 단어와 구 정도는 당연히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일 거라고, 그리고 질의응답은 제가 실시간으로 통역을 할 만큼 영어가 자유롭지 않으며,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떨리는 부분도 크다고. 교수는 일단 알겠다고했다. 그래서 발표되는 연구의 저자는 교수A, 교수B인 것으로, 질의응답의 진행은 사회자인 교수B가 하는 것으로 통화는 마무리됐다.


나는 기꺼이 커피도 타고, 교수 연구실의 책 정리를 돕고, 액자를 맞추는 것과 같은 사적인 심부름을 하고, 교수의 영문 초록을 수정하고, 논문의 인용형식을 정리하고, 수업의 강의록을 만들고, 행정보고용 연구성과를 정리하고... 모두 큰 불만 없이 기꺼이 하고 있다. 동네 아저씨가 눈 치우는 것을 돕는 마음처럼, 가까운 웃어른인데 이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실제로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래, 논문에서 내 이름을 뺀다는 것도 아닌데 무슨 큰 대수냐, 하고 넘기려는데 마음이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이건 남의 일을 거들거나 이익을 조금 양보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권리를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학계에는 연구윤리가 있고, 원리와 원칙이 있는데 어떻게 해도 그것에 들어맞지 않았다. 내가 한 연구에 내 이름을 넣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실제로 이 일에 문제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고, 또 사실 이 일로 부딪치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 하지만 내게 닥친 이 상황과 나의 대처가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내 신념에 어긋난다는 것이 마음에 자꾸 남는다. 윤리적인 원칙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 항상 지켜야만 '원칙'이 된다는 것 나의 생각이다. 교수2는 상황에 맞추어 한 번 적당히 넘어간 규칙을 다음이라고 또 어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나는 또다시 침묵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튀고 싶지 않고, 체면을 차리고 싶고, 연구실적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닥쳤을 때 원칙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지 않는다는 보장은 이 사건으로 사라졌다(사실 이전에도 한 번 있었다. 별다른 참여를 하지 않은 교수B는 실제 연구책임자인 교수X을 밀어내고 교신저자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논문을 작성한 나는 제1저자로 남았고... 교수들끼리 조정한 일이라는 믿지못할 말에 나는 침묵했다. 교수X는 제2저자가 됐고 나는 아직도 죄책감을 안고 산다). 나는 교수B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신뢰를 잃었다.


 자신의 원고를 지키기 위해 출간을 포기한 후배의 상황이 오늘에서야 크게 다가왔다. 그 친구는 후에 '얻을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교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당장 껄끄럽더라도 대화를 통해 자기 뜻을 확실히 전달하고, 부당한 것은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냥 '네...' 한마디 하고 끙끙 앓는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비겁함과 앞으로 다른 형태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부당함은 접어두더라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가 작게는 이 연구실과 단과대학, 크게는 대학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원생이 노동과 공로에 대해 마땅한 대가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있는 일이다. 실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대학이나 테뉴어를 딴 후 연구를 멈추는 교수들의 문제는 이 길의 초입에 선 대학원생이 손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대학원생이 마주치는 불의는 모두가 짚고 넘어간다면 개선될 수 있다. 학계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고상함...은 고사하고 상식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기성세대와 같이 무감각해지기 전에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변화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수 있다. 나는 제일 아랫사람이지만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인데, '크지 않은' 부당함이므로 받아들인다는 선택으로 다른 대학원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연구를 발표할 때 학생의 이름을 넣지 않을 수 있다는 선례가 되어서, 후에 다른 학생을 설득할 때 쓰이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원리와 원칙은 거의 뜬구름과 같이 막연하고 이상적인 가치이다. 학위를 담보로 잡혔고, 정교수의 이름이 없이는 논문 게재가 불가능하고, 유학만 갈래도 추천서가 필요한 대학원생은 조직의 흐름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현실로 돌아오면, 고인 물 같은 학교 내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교수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다. 연구 내용에 직접 관여하는 부분이 크지 않더라도 무슨 일을 되게 하는 데에 전임교원의 이름이 필요한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다. 교수가 내게 마음 써주는 부분이 많은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박사도 아닌 석사과정 중의 연구실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고, 거기에 이번 발표는 더더욱 별일이 아니다. 교수에게 빚진 것이 없고, 사적인 인연(정)이 아니라 필요(성과)에 의해 이어진 관계라는 점에서 떳떳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신물이 올라오지만, 이게 후진 사회의 좁은 물이어서 그럴 것이라는 마음 하나로 버티고 있다. 해외의 주류 대학에서도 부조리와 부당함이 만연하다면 미련없이 공부를 관둘 작정이다. 나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거나, 만연히 떠도는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며 경력을 쌓겠다고 버둥대지는 않겠다는 다짐이다.




 학과 사무실에는 학기마다 연구윤리와 관련한 책자가 내려온다. 교수들에게 한 부씩, 대학원생 교육용으로 한 묶음 더. 성희롱 방지 지침문서나... 뭐 각종 권고문을 발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학교 행정국은 학생과 교수 사이의 질서를 바로세우려고 노력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엔 단과대에서 설립 몇몇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각 학과에는 두달동안 주말을 포함해 매일 오전/오후 '관련 업무'를 맡을 shift가 할당됐다. 막무가내로 대학원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첫날 일을 갔다온 후배 말로는 책을 벽에 고정해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기념품을 나르고, 우편물을 포장하는 등의 단순하고 피곤한 노동을 시켰다고 했다. 우리과는 물론이고 다른 과에서도 뿔이 났다. 왜 대학원생의 expertise가 필요하지도 않은 단순 노동에 댓가 없이 봉사하길 요구하는 것이냐고. 내가 보기에도 이건 학부생에게 최저시급이라도 쥐어주고 시켜야하는 일이 맞았다. 우리과의 학과장은 아주 무심해서... 조교장이 대신 진상을 파악하고 다른 과 대표들과 함께 이의를 제기하러 내려갔는데 담당직원은 아주 미안한 얼굴로 자신도 위에서 시킨 일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죄송하지만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연신 사과했다고 한다. 약은 처신이든 정말이든 간에 행정국도 대학원생을 노예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과의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 대신 강하게 항의를 해서 막노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다. 하지만 로비의 전시물을 4주간 지키는 것은 여전히 대학원생의 몫으로 남았다. 우리는 멍하니 로비의 책상에 앉아서 한나절씩 사람들이 전시물을 만지지 않도록 안내해야 했다. 물론 무급이었다.


 당시 행사의 다른 한 축은 대학원생의 학술제였다. 각 학과에서 대표가 두명씩 차출되어 두시간씩 세 차례의 회의를 가졌는데, 내용인 즉 행정국에서 대학원생들의 활발한 연구 교류를 위해 모든 과가 참여하는 학술제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학과가 참여하는 것을 가정으로 하고 회의가 진행됐다. 각종 어문학과와 역사, 철학, 심리학과를 통합해서 두 갈래의 주제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난제였는데, 각 과에서 발표를 할 학생과 토론을 맡을 학생 두 명씩이 또 할당되었다. 발표를 맡은 사람은 아무리 써둔 보고서나 출간한 논문을 바탕으로 한다해도 50분에 맞추어 발표자료를 만들어 구성을 재정리, 준비하려면 최소 여섯시간은 투자해야 할 것이었다. 토론을 맡은 사람 역시 남의 연구를 읽고, 숙지해서 토론거리를 준비하려면 시간을 쏟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학장이라는 사람은 '보고서 뭐라도 써둔 것 있을 거 아니에요'라며 사람들을 떠밀었다. 나도 토론자로 참여해야했는데, 당일에 가보니 이 학술제는 역시나 보여주기식, 단과대 차원의 실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행사였다. 각 학과의 참가자, 진행과 녹화를 맡은 행정직원을 빼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심지어는 영상 촬영과 홍보목적으로의 사용에 동의하길 강요받았다). 우리가 행사의 주체로 동원되고 받은 것은 회의 때 샌드위치 한 개, 학술제 때 뒤에 놓인 과자 몇 봉지였다. 행정국마저도 실적을 위해선 대학원생을 마음껏 부려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종 윤리관련 교육문을 발행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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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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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례행사를 맞이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의자는 옷걸이로, 책상은 온갖 물건을 늘어놓는 선반처럼 썼었는데 싹 치우고 빈 책상에 앉는 느낌이 새롭다... 좋다ㅎㅎ. 정리중 발견한 메모에는 '우리는 얇게 썰린 소세지가 생각할 수 있다면 생각할 법하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더 나을 것도 없다(Nous pensons comme un saucisson coupé en tranches pourrait pensait, s'il pensait. De fait, nous en valons guère mieux).'라는 말이 있었다. 메쇼닉이 인간 사고의 분절성에 대해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얇게 잘려진 소세지'라는 비유가 진지한 책에 나오는 게 귀여워서 적어놨던 기억이 난다. 


 쌓여있던 잡동사니 중에는 '여자없는 남자들'이라는 책도 있었다. 밥 잘 먹었다며, 한적한 영풍문고에서 책구경하다 선물받은 소설이다. 내 주위 아무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혹시 내가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처럼 망상으로 모든걸 꾸며낸 건 아니었을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책이 딱 나와서 웃음이 났다.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고도 한참을 속상해하고 아쉬워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드디어 이게 지나간 일이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사랑? 호감? 뭐든 관계를 지속시키는 그 감정이 동시에 끝나지 않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치만 그 사람은 짧은 시간동안 내게 많은 것들을 남겼다. 꼭 고통을 통해서만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불안만이 생산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 원초적인 무력감, 고독감이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건강한 방법으로 나를 이해하고 가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모두 사용하고 나누는 관계에서는 편안한 결속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회의를 덜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취향이 있는 사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의 차원과는 달리 관계 자체에 대한 방향감각, 지표가 생긴 것 같다. 책은 책장에 잘 꽂아 두었다.




 전 남자친구가 준 귀요미. 사실 한 사람을 빼고는 많은 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걸 발견했지?'에서부터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필요는 없었는데'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에 별 감정이 일진 않는다. 무슨 회상이든 항상 마지막엔 그 사람들은 나와 역할극을 하면서, 그걸 짐스럽게 여긴 것 같다는 인상으로 연결된다. 온전히 상대방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건 불나방같이 무작정 들뜬 마음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빠져드는 상태, 꼭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자주 나만 사춘기 문학소녀 감성에 빠져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곤 했다. 다들 한 걸음 정도만 발을 뻗었고, 나머지 한 발은 제자리에 꽉 디뎌 고정하고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 탓만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나와는 다른 나름의 가치체계가 있었겠지. 이런 저런 선물이 남았고, 다양한 체험을 했고,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지난 세월을 가늠할 때 연도에 우선해 시기를 나누는 기준이 됐지만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선 가치관에 통합할 만한 인식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반면, 가장 오래만나서인지 가장 가까웠어서인지 X는 내게 첫번째 레퍼런스가 됐다. '관계'하면 항상 떠오르는 참조점.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는 법도 학습이 필요한데, 내가 딱 그랬다. 뚜렷한 이유나 목적없이 누군가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그 전까진 몰랐다. 누군가 다가오면 나를? 왜?? 착각일거야. 금방 실망할거야. 라는 생각에 항상 겁부터 먹고 도망다녔는데, 꾸밈없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런만큼 그 만남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 됐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집을 나오면 볼 수 없어도 책상이 그 자리에 계속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 사람의 인생? 머릿속? 마음 그 어딘가에는 내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피폐한 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많이 밝아졌다. 사랑받는 경험을 통해서 건강해지는 것 말고도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면 안된다는 것, 아무리 가까워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처럼 관계에 중요한 것들을 많이 깨달았는데, 나도 그사람에게 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내게 해준 만큼 그대로, 상처와 결핍까지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건강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과거의 경험을 모두 더한다고 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경험으로 얻은 것들은 나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인간과 관계, 삶에 대한 지혜는 어느 책을 펴도 조금씩 찾을 수 있지만 머리속에 글자로 돌아다니는 그 지식과 달리 경험으로 얻은 인식은 내 안에 새겨진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모두가 선뜻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내 경험과 생활방식을 토대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는 것 부터가 절대 쉽지 않다. 스무살보다 서른살에 훨씬 가까운 지금은 허우대가 멀끔하다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무작정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다. 이 문화 안에서 짜여진 대본을 따라가는듯한 그런 관계는 더이상 맺고싶지 않다. 기꺼이 몸을 던져 나름의 시행착오와 고민을 겪어온 사람, 그래서 사람도 삶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다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똑같이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비관이나 회의, 냉소에 젖지 않고 그 무의미함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사람. 그러니까 적어도 이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그런 다짐같은 믿음을 향해있는, 냉소보다는 미소에 더 가까운 사람. 경험과, 경험에서 비롯한 가치관과, 가치관에서 뿌리내린 믿음이 없으면 흔적없는 관계만 되풀이 될 뿐이다. 


 나는 아직도 못난이 우울증 환자지만... 사람들을 겪으며 모난 구석을 부지런히 깎아냈고, 겁먹지 않고 한 발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나이가 들고 꼬부랑 노인이 되어도 항상 인간 됨됨이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원만하고 차분하고 일상의 소소한 지혜가 많은 사람. 그리고 관계를 맺게 된다면 연인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항상 타인임을 상기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싶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모두 항상 생생하도록. 책상을 치우다가, 토막난 소세지같은 생각을 하다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것. 거기에 더해 조금 부족한 연구자가 되더라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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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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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X의 기일인 것 같다. 확실하지 않은 이유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인은 2월 6일이었는데, 나는 당일에서야 급하게 연락을 받았고 유가족들은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았다. 1일장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아마도 2월 4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발인이 열두 시 반이었는데 나는 열 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를 받았다. 저희 언니랑 친하셨던 것 같아서… 전화드렸어요. 두 시간 내에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여섯 명. 나보다 먼저 와있던 동아리 사람은 한 명, 언니랑 친했던 선배였다. 일하던 중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왔다고, 오렌지색 점퍼에 흰 운동화를 신고 민망해하고 있었다. 얼떨떨함을 공유하면서 화장장에 들어가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둘 다 사흘 전 같은 시간대에 이 언니로부터 똑같은 카톡 메세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라파덕이, 콜라병이 어쩌고하는 뜬금없는 퀴즈. 나는 술을 마시던 중이어서 그냥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답장했었고, 이 선배는 야근 중에 평소처럼 '꺼져 븅신아’라고 보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이 메세지를 받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건데, CPA를 준비하던 그 선배는 휴대폰을 수리센터에 맡겨놓던 중이라 의문의 카톡도, 갑작스러운 부고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장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니 곧 X의 영정사진이 올려진 까만색 관이 도착하고, X의 이름을 토해내는 곡소리가 들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얀 뼛가루가 단지에 옮겨졌다. 순식간이었다.


 1일장이었음을 알고 나서는 카톡 창에 떠있는 그 여러 줄짜리 퀴즈를 볼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였는지 멍한 표정으로 앞으론 절대 후배들에게 욕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술 한 번 사줄걸, 한 번을 못 사줬어, 하고 중얼거렸다. 내가 카톡에 뒤늦게 답하는 것이나, 이 선배가 욕을 하는 것이나 모두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괴로울 수밖에 없는 건, 우리 모두 이 언니가 늘어놓는 푸념을 들어주기 귀찮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X는 몇 달째인지 일의 지겨움과 힘듦, 남자친구와의 갈등에 대해 기회가 날 때마다 구구절절 토로했다. 뚜렷한 갈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이 언니가 항상 남자친구에게 굉장히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배들은 술을 사주다, 지적을 하다 포기했고 후배인 나는 들어주다가, 조심스럽게 타박을 해보다가 포기했다. 시간은 계속 지나는데 문제는 심화되고 푸념도 그만큼 길어졌다.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아이고 여기 흑역사 하나 추가요ㅋㅋㅋㅋ’하며 술이나 같이 마시는 것이 내 일이었다. X는 나보다 술을 못 마시는데 항상 나보다 더 마셨다.


 X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내가 신입생일 때 동아리 방에서이다. 그때가 시험 기간이었나, 그랬는데 시시덕 놀고 있던 나와 동기들에게 아 시끄러워 진짜 정신 사납게 하고 짜증을 내던 목소리. 언니도 내 인상이 좋지 않았을 거고, 나도 첫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둘 다 술을 좋아해 자주 술자리에서 보다가 친해졌다. 기말고사 때는 스타벅스에다가 진을 치고 같이 공부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연극과 전시를 같이 보러 다녔다. 동아리방, 캠퍼스 곳곳의 앉을 구석들, 술과 커피, 전시회, 책, 진로 고민, 남자 선배들과는 갈 수 없는 우아한 식당, 화장품, 머리 스타일… 내게 X는 가장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났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화상통화를 하면서 원격으로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X에게는 동네 친구가 있었지만, 내게는 다른 친구가 없었다.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같이 여행을 다녀온 것도 X가 처음이었다.


 어느 단추가 잘못 끼워진건지. 그 해 겨울 하루는 X가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고 나왔다. 살기 싫다, 힘들다를 달고 살던 중이어서 상황은 뻔해 보였는데, 그렇다고 자해까지 할 줄은 몰랐고, 그래서 나는 뭐라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위로를 해야 되나, 이건 아니라고 다그쳐야 하나. X는 상처가 심각한 건 아니라며 이 일 때문에 그래도 헤어진 남자친구가 달려왔다고 했다. 같이 응급실에 다녀오고, 집에도 같이 와서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아 언니 진짜 왜 그래요. 그러지 마요. 자해도 집착도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선 위기를 알리는 어떤 경고 벨이 울렸는데 남의 인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상담도 권해보고, 운동도 권해봤지만 언니는 계속 전화를 걸고 문을 두드리고 결국에는 모진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상처를 냈다. X가 수렁에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익숙해지고 무뎌졌다.


 오늘은 자료 검색을 하다 무슨 검색어를 쳐서 그랬는지, '멀티플렉스에 나타나는 공간의 허상'을 주제로 한 논문을 마주쳤다. 이런 논문은 어느 학과에서 쓰는 걸까, 생각하다가 문득 예술학과에 다니던 X 생각이 났다. X는 졸업 즈음에 알바로 타교생의 논문을 써줬다고 했는데,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은 게 후회됐다. 미술관을 관두고 언니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했는데… 형편이 허락질 않는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했다. 집안의 기대가 싫다고 징징대던 나는 얼굴이 화끈해져서 언니는 그깟 시험 금방 붙을 거란 말밖에 덧붙일 수 없었다. 싸이월드의 데이터가 모두 없어졌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가벼움이 미덕인 것처럼 굴었던 것이 후회된다. 겨우 두 해 지났는데 기억은 벌써 희미해지고 있다. 언니의 내면 한 자락씩을 보여주던 글들이 그립다.


 성묘?를 갈까해서 사람들을 모아봤는데, 대부분은 답이 없었다. 결국 매번 같이 술 마시던 선배들 서너 명만 모이게 됐다. 위패 옆에 두고 오려고 무의미의 축제라는 책을 샀다. 제때 성의껏 응답하지 않아서 후회되다가, 인생 원래 무의미한 거라고 몰아붙이고 싶다가… 깨닫는 건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는 거다. 그냥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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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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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우울과 불안은 아주 다르다. 우울은 조용하고, 불안은 산만하다. 우울할 땐 무감각하고, 불안할 땐 과민하다. 우울할 땐 아무 감흥 없이 기꺼이 죽고 싶어서 무섭고, 불안할 땐 죽을까 봐 무섭다. 어제는 잠에 들지 못하고, 창밖으로 어둠과 빛이 느릿느릿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을 봤다. 우주와 세상이 매정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초조하면서 무감각했다. 


 오늘은 초조하면서 무감각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나왔고, 억지로 운동을 했다. 카페에 앉아 당장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을 겨우 처리했다. 오늘은 아무것에도 감사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심지어는 자고 싶지도 않았다. '몸 둘 바를 모르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게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결정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적당히 책을 펴 놓고 앉아있었는데, 주위 테이블에선 하나같이 어려운 대화들을 했다. 신념, 정체성, 근대, 젠더, 초국가... 거기에 낯선 외국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들렸는데, 그 연대미상,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내게 너 그렇게 살 거니, 그게 맞는 길인 거니, 정말 니가 원하는 게 뭐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쉬어야 일도 할 수 있다고 되뇌어봤다. 맞는 말인데, 휴식마저도 일을 위한 예비 과정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헷갈렸다. 언제부터인지, 일하지 않는 시간엔 항상 얼마간 초조하다. 천천히 밥을 먹고,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고 영화도 보지만 충분히 집중할 수 없다. 수면마저도 이완의 기능을 잃은 것 같다. 심지어는 가만히 있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 어떤 컨텐츠도 소비하지 않고 맨손으로 조용히 있는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파서 앓아누울 때쯤 되어야만 외부 자극에서 온전히 벗어나진다. 뭐가 뭔지,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아ㅡ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밤마저도 환한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가벼운 옷을 입고, 어깨를 드러내고, 맨발로 신발을 신고 싶다. 여름엔 왠지 조금 더 몸으로 살게 되는 것 같다.


 부우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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