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fant gâté

그림을 찍은 사진기는 iphone 5

3개 발견

  레깅스 위에 기모 추리닝을 덧입고, 위에도 얇은 티를 세 장은 껴입고 그 위에도 또 니트, 두꺼운 등산 잠바(아빠꺼), 그리고 동생네 학교 패딩을 입고 나왔더니 하나도 춥지가 않다. 눈만 내놓고 얼굴도 목도리로 칭칭 둘렀다. 어제는 춥다 못해 살이 베일 것 같이 아팠는데, 오늘은 확실히 덜 추운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이 입은 걸까...?


 아무튼 해그리드만한 덩치가 되어 뒤뚱뒤뚱 헬스장에 갔다. 며칠째 체기가 가라앉질 않아 공복으로 좀비처럼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공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헬스장 데스크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오늘은 듣도보도 못한 노래들이 나왔다. 평소에 니 몸매가 어떻다는 둥, 어딜 만지고 싶다는 둥 하는 자세히 들을수록 낯뜨거운 노래가 나오던 것에 비하면 새롭고 좋았다. 나는 스트레칭을 마치고 제일 자신 없는 팔굽혀펴기로 시작하려고 매트를 펼친 건데, 한 세트를 하고 잠깐 쉰다고 엎드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여기엔 분명 가곡인지 발라드인지 처음 들어보는 느릿한 노래도 한몫했다. 한 십분 정도, 기절하듯 자다 일어나니 주위에 사람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땀 흘리며 몰두하는 분위기에 고무되어서 나도 유산소까지 두 시간 가량 ‘파이팅 넘치게’ 운동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니 역시 살이 빠지고 있다. 살이 빠졌다기보다는, 완만한 하락세가 시작됐다. 이런 건 측정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몸의 부피를 줄이고 싶진 않지만, 무게가 줄면서 단단해지는 것 같은 어렴풋한 이 느낌은 ‘올바른’ 방향인 것 같다. 피로하면서도 가볍고 좋은 기분, 그 기분을 만끽했다. 이런 시간은 제 궤도에 있는 것만 같다. 하릴없이 그냥 보내는 시간과는 다르게 어떤 서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아무리 혼자 다니며 아껴봐도, 하루에 만원은 넘게 쓰게 된다. 한 끼 정도 사 먹고(그마저도 김밥 혹은 샌드위치), 공복을 달래기 위한 군밤이나 고구마 말랭이, 거기에 물, 커피 등을 사면 만원은 우습다. 택시비나 초콜렛이 더해지면 금방 이만원이다. 책이나 필름, 화장품이라도 사면 답이 없다. 그래도 각종 브랜드의 세일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는 나를 보며 속세에서 멀어지긴 했구나, 하고 느낀다. 아무튼, 작년엔 학교에서 장학금을 엄청나게 받았는데, 야금야금 생활비로 다 까먹고 있다. 일년치 생활비 정도는 저축해놓고 싶었는데.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에선 얼마 전부터 연금 가입하라고('든든한 노후, 미리 대비하세요!') 징그럽게도 계속 우편물을 보내온다. 소득도 없는 내게 왜이러는 거지... 장학금도 소득으로 잡히나... 아무튼 이 나이에 돈 한 푼 못버는 내 처지를 상기하는 이런 우편물은 수신거부 하고싶다. 국민연금? 연말정산?? 소득공제??? 너무 낯선 개념들.





 요새는 모든 소통이 문자로 이루어진다. 입을 열 기회는 별로 없고 지겹게 이메일, 이메일, 워드 파일, 엑셀, 문자 메세지… 가끔 전화라도 할 일이 생기면 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행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까지 느껴진다. 그저께인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생각지도 않던 연락이 왔는데, 새벽 두 시 반에 울리는 알림을 보며 놀라움과 반가움과 설렘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지만, 마음을 글자로 고정해 건네고 싶지 않았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것이 더 컸다. 서너 번 읽고, 메일함을 닫았다. 나도 모르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가, 작게 소리도 질렀다가, 겨우 바로 눕고는 온몸에 크게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잤다. 잠들기까지의 그 시간이 마치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끝없이 어딘가로 떨어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다행히도 하루 만에 새 메일이 우수수 쏟아져서 돌부리 같은 메세지는 보이지 않는 창 아래로 파묻혔다. 사실 문자든 입말이든 피로하다는 건 그냥 핑계이고, 대면할 용기가 없다. 기꺼이 또 한 번 뛰어내리고 싶다가도(그 순간만큼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날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그냥 없는 일인 것 처럼하고 싶기도 했다. 갈팡질팡. 아,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다... 가만 있어야지.


 아무튼 오늘은 기분이 하루종일 좋았다. 학교 안의 카페에는 아주아주 친절한 언니가 있는데, 오늘도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어 안녕하세요!'하고 활짝 웃으며 인사해줬다. 그 인사말이 마치 '오셨어요!' 쯤의 반가운 인사로 들렸다. 그 발랄함에 나까지 기분이 유쾌해졌다. 조금 이따가는, 머리를 싸매고 논문을 읽는 중에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하면서 버섯과 치즈가 잔뜩 들어간 파니니를 작게 잘라 (모든 고객에게) 나눠줬다. ㅎㅎㅎㅎ. 자리를 옮겨 한참 일하다 도서관을 나오는 길에도 친절한 사람이 있었다. 대문을 열려고 팔을 손잡이에 대고 어깨에 체중을 실어서 밀었는데, 바닥이 미끄러워서 문은 안 움직이고 나만 뒤로 밀려났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약한 척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는데 뒤에서 누가 문을 밀어줬다. 그리고선 앞서나가서 한 겹 더 있는 문을 열고 잡아주기까지 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은 아직 훈훈하다! 걸어 나오면서는 오늘 충동적으로 산 비싼 초콜렛 한 알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혼자 있을 땐 뭐든 야박할 정도로 작게 잘라서 먹는 것이 습관인데(조금씩 먹어도, 많이 먹어도 맛은 똑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꽤 걸어 나오는 내내 입안에 가득 차는 맛을 누리면서 이것도 나름의 쾌락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택시 아저씨마저도 유쾌하고 친절했다. 콧노래와 들뜬 마음을 여기에다 쏟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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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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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anore Rigby: "Tragedy is like a foreign country, you don't know how to talk to the natives."

L. P. Hartley: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 They do things differently there."


지루하게 본 영화였지만 단박에 외워질 정도로 인상 깊었던 대사인데, 알고 보니 추상적인 개념을 타국에 빗댄 은유는 아래의 작가가 오십 년은 먼저 써낸 표현이었다. 그런데 두 문장을 모아놓고 보니 '과거'와 '비극' 대신 뭘 넣어도 그럴듯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Sympathy is like a foreign country. Some people never get to set foot in it. They just can't afford the trip."

"Relationship is a foreign country. You have no idea where you are when you lose your ways."


'공감' 대신 '행복'을 넣거나, '관계' 대신에 '우울'을 넣어도 말이 된다. '사랑'은 어디에 넣어도 되고. 오글거리는 건 어떡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낯선 이국의 내전과 드문드문 전해오는 뉴스 속보들, 국경 너머로 지는 야속한 해의 이미지를 접하며 오글거린다는 부적절한 생각을 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You are a foreign country라는 은유가 떠올라서( - and I'm walking on the ground bare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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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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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os-Câlin. 옛날에 좋아하던 사람이 읽고 있다는 책이라길래 따라 샀는데, 연락이 끊어지곤 읽기를 관뒀다. 꼭 연락이 끊어져서가 아니라, 계속 읽어 나가기가 무서웠다. 


 그로칼랭은 아주 꼭 안는 포옹이란 뜻인데, 주인공은 a) 엄청 큰 뱀을 키우겠다고 사다가 그로칼랭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b) 누군가 발끝부터 온몸을 꼭 안아주는 느낌은 상상하면 애틋하고 감동적이지만, 그로칼랭이 주인공을 꼭 안아주는 건 안쓰럽기만 했다. c) 주인공은 뱀의 먹이로 토끼, 돼지 쥐, 기니피그를 사와선 집에서 풀어놓자마자 즉각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애착을 붙인다. 그래서 먹이로 주지를 못 하는데, d)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보기 아프면서도 예뻤다. 처음엔 그 e) 연약함이 사랑스러웠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 연약함이 무서워졌다. 뱀은 이 남자에게 우정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먹이로 생각하고 둘둘 감아서 위협하는 것 같은데 이 사람은 거기서 유일한 위안을 느끼고...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이 자기파괴적이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결국 f) 뱀에게 아무것도 못 먹이다가 잡혀먹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 끝까지 읽고 싶지 않았다. 


a) ㅡ Oui, je sais, tout le monde ici en parle, fit-il. Peut-on vous demander, Cousin, pourquoi vous avez adopté un python et non une bête plus attachante?

ㅡ Les pythons sont très attachants. Ils sont liants par nature. Ils s'enroulent.

ㅡ Mais encore?

J'ai remis la photo dans mon portefeuille. 

ㅡ Personne n'en voulait.

Il me regarda curieusement. 


b) Mais avec Gros-Câlin ainsi nommé, je me sens différent, je me sens accepté, entouré de présence. Je ne sais pas comment font les autres, il faut avoir tué père et mère. Lorsqu'un python s'enroule autour de vous et vous serre bien fort, la taille, les épaules, et appuie sa tête contre votre cou, vous n'avez qu'à fermer les yeux pour vous sentir tendrement aimé. C'est la fin de l'impossible, à quoi j'aspire de tout mon être. Moi, il faut dire, j'ai toujours manqué de bras. Deux faut dire, les miens, c'est du vide. Il m'en faudrait deux autres autour. C'est ce qu'on appelle chez les vitamines l'état de manque.


c) J’ai surmonté le premier pas et j’ai acheté une souris blanche, mais celle-ci changea de nature dès que je l’ai sortie de sa boîte dans mon habitat. Elle prit brusquement un aspect personnel important, lorsque j’ai senti ses moustaches au creux de ma main. Je vis seul, et je l’ai appelée Blondine, à cause, justement, de personne. Je vais toujours au plus pressé. Plus je la sentais petite au creux de ma main et plus elle grandissait et mon habitat en devint soudain tout occupé. Elle avait des oreilles transparentes roses et un minuscule museau tout frais et ce sont là chez un homme seul des choses qui ne trompent pas et qui prennent des proportions, à cause de la tendresse et de la féminité. Quand ce n’est pas là, ça ne fait que grandir, ça prend toute la place. Je l’avais achetée en la choisissant blanche et de luxe pour la donner à manger à Gros-Calîn, mais je n’avais pas la force masculine nécessaire. Je suis un faible, je le dis sans me vanter. Je n’ai aucun mérite à ça, je le constate, c’est tout. Il y a même des moments où je me sens si faible qu’il doit y avoir erreur et comme je ne sais pas ce que j’entends par là, c’est vous dire son étendue.

  Blondine a aussitôt commencé à s’occuper de moi, grimpant sur mon épaule, farfouillant dans mon cou, chatouillant l’intérieur de mon oreille avec ses moustaches, tous ces mille petits riens qui font plaisir et créent l’intimité.

  En attendant, mon python risquait de crever de faim. J’ai acheté un cochon d’Inde, parce que c’est plus démographique, l’Inde, mais celui-ci aussi trouva moyen de se lier immédiatement d’amitié avec moi, sans même faire le moindre effort dans ce sens. C’est extraordinaire à quel point les bêtes se sentent seules dans un deux-pièces du grand Paris et combien elles ont besoin de quelqu’un à aimer. Je ne pouvais pas jeter ça dans la gueule d’un python affamé par simple égard pour les lois de la nature.


d) Je m'attache très facilement. C'est un besoin, chez moi, de protéger, de m'offrir à quelqu'un d'autre.


e) Je suis toujours impressionné par l'incompréhensible, car cela cache peut-être quelque chose qui nous est favorable. C'est rationnel, chez moi. 


f) Lorsque je regarde Gros-Câlin, je le vois lourd de possibilités à cause de mon ignorance, de l'incompréhension qui me saisit à l'idée qu'une telle chose est possible. C'est ça, justement, l'espoir, c'est l'angoisse incompréhensible, avec pressetiments, possibilités d'autre chose, de quelqu'un d'autre, avec sueurs froides.



그리고 이건 문장을 짜기워서 만든 오늘의 일기) Elle est très jolie. Je pourrais la rendre plus belle encore, dans mon imagination, mais je ne le fais pas, pour ne pas augmenter les distances. - Il y avait là peut-être une amitié en train de naître, à cause de l'incompréhension réciproque entre les gens, qui sentent ainsi qu'ils ont quelque chose en commun. ㅡ Il est bien connu qu'il n'y a qu'un pas de l'aspiration à l'expiration.



1/3 정도 읽고 말았는데, 혹시 이 책의 끝이 희망적일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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