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fant gâ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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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2016.07.28 00:17 -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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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2016.01.30 02:45 -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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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Jukebox|cfile5.uf@2459C14A56B1CB4401A502.mp3|FKJ feat. Tom Bailey_Drops.mp3|autoplay=0|_##]



이제야, 오늘에서야 FKJ (live)가 눈에 들어왔다. 위 아래로 모르는 이름도 찾아 들으니 괜찮은 곡들이 많다. 아, 놀러 갔다 왔으면 자랑거리 하나 생기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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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03:11 -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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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5 03:17 - oui?

 오늘도 사탕 까먹듯 밤을 새운다. 밤에는 마음이 대체로 편안하다. 한낮에는 그 쨍하고 가득한 빛이 어떤 정점임을 상기해서, 이제 내리막길 밖에 안 남았단 생각에 안타깝고... 해가 정말 기울다 시시각각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설명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어디든 빛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해의 움직임을 통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데, 밤이 되고 나면 그 흐름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까맣게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 얼마나 달달하게 느껴지는지. 


 빛. 빚. 빚쟁이. 의식하고 들춰 보니 저물녘의 사진이 엄청 많다. 한참씩 들여다보는데 내가 찍은 사진을 이렇게 애지중지... 이것도 자아도취가 아닌가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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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풀이

2016.01.23 22:09 - oui?





현상해놓고 아이고 못생겼다, 했는데 화가 나니 삐죽삐죽 빽빽한 가지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이 동네는 마치 가족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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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나보코프: 

 "나는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데, 스스로의 모델이 되는 데 몹시 익숙해져 버렸다. 바로 그 까닭에 내 문체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제 도무지 원래의 내 껍질 속으로 돌아가서 옛 자아 안에 편안히 기거할 수 없다. 그곳은 엉망이 돼버렸다. 가구는 재배치 되었고, 램프는 다 타서 꺼져버렸다. 내 과거가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심리평가보고서:

 "사고상에서, 사고의 생산성은 풍부한 상태임(R=20). 현재 내적인 사고가 매우 복잡한 상태로 여겨지고 있으나 사고처리의 노력이나 효율성은 다소 저하되어 있어 외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겠음. 관습적인 사고는 비교적 유지되고 있어 보이지만, 외부 자극을 다소 작위적으로 해석하거나 오해석할 가능성이 증가되어 있겠음.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큰 갈등이 경험되어 있지 않아 보이며 긍정적인 관계경험이 보고되고 있음. 하지만 현재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도 관찰되며,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예민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Pa 예민성=69T). 이를 내색하지 않고 겉으로는 친근하고 밝은 모습으로 대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음.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소 거리감을 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내비치기 어려워 하고 있어 보임(I. 입을 가려놓은 호박 램프 ...)."


엄마의 육아일기:

 "그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어쩜 저렇게 어렸을 때랑 똑같을까 신기하다. 다섯살 때였나, <개미와 배짱이> 그림책을 잠자리에서 읽어주다가 애가 울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서 배짱이처럼 놀지만 말고 개미처럼 열심히 일(공부)해야 한다는 '교훈'을 못 알아듣는 아이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도대체 뭐가 슬픈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애를 달래면서 물어보니 아이는 개미가 너무하다고 화를 냈고, 베짱이가 불쌍하다면서 계속 울었다. ... 그림책의 글이 아니라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진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날 헐벗은 배짱이가 개미에게 쫓겨나서 눈보라치는 벌판을 혼자 걸어가는 두 페이지에 걸친 어두운 그림이 글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충분히 비극적으로 다가가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인생 최초의 연애편지:

 "하이~ 나 형 석 이야. 너 모 하 고 있 어? 궁 금 하 다 내가 편 지 쓰 는 이유는 내 가 너 한 테 할 말 이 있 어 서 야 모 냐 면 널 예 전 부 터 좋 아 했 어 그리고 편지쓰는 건 처음이야 글 구 당 황 스 럽 겠 지 만 답 장 써죠. 꼭 -형 석 이 가-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니 친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 가방에 쟤가 편지를 넣는 걸 봤다고 했다. 장난일까, 혹시 욕은 아닐까, 진짜 고백일까, 진짜?하고 하루종일 기대에 부풀어있다가 집에 돌어오자마자 편지를 열어 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성적표:

 문학: 81 국사: 56 사회문화: 87 수학1: 71 생활과과학: 72 체육: 97 미술: 95 프랑스어독해: 86 프랑스어회화: 97 영어독해1: 88 영어독해2: 85 영어회화2: 98 중국어1: 56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그냥 무난해보이지만 석차를 보면 꼴지 수준을 벗어난 과목은 절반밖에 안된다. 이 때는 심장이 너무 뛰어서 성적표를 펼쳐보는 것도, 그 안의 숫자를 똑바로 읽기도 힘들었는데 10년이 지나니 정말 아무렇지 않아지는구나. 내 주위의 하위 10%들, 걔들도 숫자가 아니고 사람이었을 텐데, 같은 교실에서 꼬박 3년을 같이 보낸 반 친구들 중 누군가였을텐데. 어떻게 견뎠으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잉게보르크 바하만: 

 "내 육신에 기거하고 있는 정신은 그것의 거짓 주인보다 한결 위대한 사기꾼이다. 정신에 정면으로 마주치는 일을 나는 무엇보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나 자신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개개의 사상이란 한결같이 낯선 데서 얻어 온 씨앗이 발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감동시킨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할 능력이 없다. 그런가하면 감동하지도 않았던 유의 사물들에 관해서나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생각을 한다. 또한 혼자 아무런 목표도 없이, 이것저것 몇 가지 카테고리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한 번쯤은 그 규칙을 바꿔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희란 바뀌지 않는다. 결코 변경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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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딴생각이 떠올라서 잘 안 읽힐 때가 있다. 책을 아예 덮자니 정확하게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페이지는 넘어가질 않고. 하나 확실한 건 읽는 양이 많아질수록 나는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거다. 세상에는 이미 온갖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중 말해지지 않은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분석가는 내가 항상 도피하는 게, 무엇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덮어버리는 게 제일 먼저 다뤄야 할 문제라고 했다. 아 정말 성가시다.


 요새는 하루에 몇 마디 하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감사합니다 한 마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제일 작은 거요(샷 추가해주세요) 할 때 한 마디. 계획한 대로 논문의 진척이 나와주질 않아서, 사람을 만날 여유가 없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소통에 대한 갈증도 기대도 사라졌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실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는 건, 오히려 언제라도 누군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날 내던질 태세라는 거다. 그런 내가 싫어서, 모두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항상 외적인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는, 끝까지 따라가 왜 사랑받기를 두려워하냐며 큰소리를 치고.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루어지지 않는 내 소원의 방향을 바꿔서, 내가 그런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한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Open Book이라는 노래를 그렇게 좋아했다.


 예전에 쓰던 일기 앱을 열어봤는데, 이전 남친들의 이야기를 읽다 하나같이 진짜 별로인 일화때문에 오밤중에 화가 다 났다. 왜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지, 헤어진 연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무슨 맥락인지 순간 아주 잘 느껴졌다. 이 뜬금없는 화는 뒤돌아서니 또 금방 사그라들었는데, 이게 자존감이 높은 자아상을 만들어 놓고 내가 그 뒤로 숨는 걸까, 하고 헷갈렸다. 상처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는 건가 하고. 그런데 내가 정말 상처받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 사람들과는 애초에 그렇게 가깝지 않았고, 내 모습을 편하게 드러내지도 못했었다. 상처를 받을 것도 없지 않나. 안그래도 알랭 드 보통은 ‘Intimacy is the capacity to be rather weird with someone, and finding that it’s okay with them.’ 이라고 했다. 근데 또 그냥 남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는 나의 상처에 대해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성향때문인 게 제일 맞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무도 나보다 중요하지가 않은 거다. 아, 눈먼 백치일 때 세상은 정말 단순하고 편안했는데.


 음 또 오늘 틀어본 드라마에선 어떤 여자가 Don’t you dare judge me!라고 말했다. 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저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 아닌가… 그것보다 먼저 내가 남의 머릿속 사정을 간섭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엔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도 번역의 한 양상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당신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해석한 만큼만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데에 차이가 있고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같은 집단 내에서도 어떤 사람 X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 다른 경우가 많은 것 아닌가(어? 나는 X는 오히려 ~한 것 같던데 같은). 사람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게 나쁜 일이라면, 나는 정말 악당 중의 악당이다.


 그런데 또 저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동사 하나에 엄청난 무게가 있는 것처럼, 조금만 일찍 그 말이 나와도 기겁을 했다. 정말 여러모로 순진한 건가… 아니면 저 사회의 사람들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 정말 윤리적 책임을 느끼나 싶었다. 저런 장면을 틀어주고 발화의 언표내적인 힘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 아무 생각 없이 점수에 맞춰 어문학과에 들어온 어중이떠중이까지 집중할 수 있는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여름, 어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서 그 가게가 문을 닫은 시간에 몰래 기어들어가 밤새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술꾼끼리 통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빨간 포도주가 싫다는 건데 그 이유는 이, 입술에 착색되기 때문이다. 매시간 양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양껏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깔끔하지가 않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그냥, 사람과 드라마가 그리워서. 외국어로 하는 실없는 이야기와 하얀 포도주 세 병으로 밤을 새웠던 것을 되새기고 싶어서. 우리는 소통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하면서도 사람을 가리지 않던, 입을 다물기 전의 내가 그립다.


 나는 정말 이렇게 혼자 가는 길을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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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 있다. 문어 괴물이 나오는 꿈인데, 나보다 큰 문어가 나온다는 것만 똑같고 내용은 조금씩 다 다르다. 어렸을 때, 십대 초반에는 그 문어가 난동을 피워서 만화에서처럼 책장의 책이 떨어져 내리고, 바닥도 갈라지고. 우리 집이 망가졌었다. 당시에는 무서운 꿈이었다. 최근 한번은 방을 치워도 치워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난장판이 되었던 적이 있다. 내가 없는 사이 그 문어가 방을 어질러놓아서... 끝내는, 짜증과 해결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 주저앉아 울다가 깼다. 또 한 번은 그 문어가 내게 치근덕거렸다. 팔을 감고 옆에서 말을 거는데 예쁜 여자랑 나를 비교해 낮은 자존감을 건드렸던 것 같다. 


 문어 괴물이라니, 그냥 내 정신상태가 유치한 것을 드러내는 줄만 알았는데 최근 정신분석을 받다 알게된 것은, 문어가 문어(文語)의 상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증할 수 없지만 생각할수록 그럴듯했다. 문어가 문자 언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들어맞았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부터 나는 별로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다행히? 엄마도 교과과정이나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신나게 아주 온종일 뛰어놀며 컸다. 숙제도 준비물도 종종 빼먹고, 뭐 그런 학생이었다. 그런데 엄마도 집착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종종 내주는 독후감 등의 글쓰기 숙제. 수학 숙제나 온갖 수행평가를 해가든 말든 간섭하지 않던 엄마인데... 유독 글쓰기 숙제만 있으면 굳이 검사를 맡아야 했고 엄마의 마음에 들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고쳐 써야 했다. 나는 그냥 나가 놀고 싶은데, 왜 자꾸 이걸 다시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짜증이 났다. 분해서 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이 계속되자 내가 그렇게 못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이 얼마나 엉망이면 계속 고쳐오라는 걸까, 라는 생각은 나는 글을 정말 못써, 혹은 나는 글쓰기가 싫어, 가 됐다.


 자의식이 생길 때쯤 부터는 글쓰기 숙제를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냥 다른 숙제처럼 대충해서 냈는데, 어떤 평가를 받든 제출한 글(각종 보고서, 독후감 등)은 왠지 쳐다보기 싫고 다시 읽기 부끄러웠다. 그러다 이즈음부터는 글의 첫 문장을 쓰기 전부터 싫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해서, 대충 해치우는 것조차도 어려워졌다. 글쓰기를 마주했을 때의 스트레스가 이상할 정도로 커졌다. 엄마는 내가 글을 감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손을 뗐는데, 새롭게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은 주위 사람들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처럼 나름의 지적 호기심, 허영심이 있어서 주말과 방학이면 각종 인문학 연구소, 대안학교, 철학 교실 등을 다녔었다. 읽을거리가 쏟아져 나오고, 생각할 거리가 생기고 자극을 받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인 데다가 다행히, 아무도 글쓰기 과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말을, 표현을 잘 못 하기 때문이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내게 사람들은 "아... 너는 글을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말이 서툴면 글을 잘 쓸 거라는 생각에 더해서, 엄마 아빠가 모두 글을 쓰는 사람이란 것이 어딜가나 따라다녔기 때문에 (애초에 저 모든 기회는 엄마가 물어다 준 것들이었다) "너는 글을 정말 잘 쓰겠구나!"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이 모든 판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도 싫고, 글로 이루어지는 인문학계?도 싫었다. 여기선 엄마아빠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싫었다. 아무도 내가 지적 호기심이 조금 있을 뿐,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긴 벅찬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해주지 않았다. 남다른 가정에서 자라, 굉장히 조숙하고 똑똑하며 글을 잘 쓸 애라고 생각하고 날 대했다. 대다수는 아무 생각 없이 즉석에서 듣기 좋은, 예의 바른 말을 떠올려 건넸을 뿐이었겠지만, 내게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발목을 붙잡고 날 끌어내리는 돌덩어리였다. 


  그렇게 살다 고3이 되고 수능을 마쳤을 때, 나는 논술문을 끝맺지 못하는 학생이 되었다. 한두 달이지만 입시가 달린 만큼 매번 다섯 시간씩 수업 + 글쓰기 + 첨삭을 모두 하는 논술 학원을 매일 갔는데, 나는 한 번도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주어진 지문을 보면 뭐든 쓸 거리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걸 짜임새 있는 글로 엮어내는 것이 되질 않았다. 항상 서론 결론 없이 본문만 두세 단락 써내는 것도 힘겹게 몸을 비틀고 뇌를 쥐어짜야 가능했다. 첨삭을 맡은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쓰기만 해보자, 그것만, 응?이라고 했다. 그러다 한번은 학원에서 직전 학기의 고대 수시 논술 기출문제가 나왔다. 원래 알고 있는 지문이었고, 학교에서 이 문제를 다뤄본 적이 있어서 모범 답안까지 읽어본 문제였다. 모범답안을 떠올려 베끼듯 써서 처음으로 서론과 본론, 결론을 모두 완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간 학원에선, 내 글이 모범답안으로 뽑혀 유인물로 출력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그 글을 해체해가며 분석까지 이루어졌다. 선생님도 칭찬했고(아주 잘 썼어요), 첨삭 선생님도 시원하게 웃었고(그래 하니까 되잖아!), 모르는 얼굴들이 흘끔 쳐다보기도 했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이거... 한 번 풀어본 문제이고 우리 학교 모범답안의 서론을 가져다 쓴 거라고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대입은 가, 나군에 예비번호도 없이 떨어지고 논술도 면접도 없는 다군에만 붙었다. 논술을 못 해서 가, 나군에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사실 수능 점수가 빠듯한 것도 컸다.)


 글쓰기는 그렇게 어엿한 트라우마가 되었지만, 다행히 경영대에 들어와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한 번 교양수업으로 선택한 '사회학의 이해' 시험이 논술이라서 역시나 글을 끝마치지 못하고 D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냥 무시하고 넘겼다. D0, F보다 못하다는 D0가 성적표에 있는데도 재수강은 생각도 안 했다. 글쓰기가 그만큼 싫었다. 아주 넌덜머리가 났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건, 딱 5년 전 교환학생 때 의미론 수업을 듣고 공부 자체가 너무너무 흥미로워서 읽고 떠오르는 바를 적으면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에 푹 빠진 나머지, 한 걸음 물러서 그것을 써내는 과정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읽다가, 집에 들어와선 누룽지만 후딱 끓여 먹고 노트북을 열고 답안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니 시간은 새벽 네 시, 분량은 아홉 장이었다. 한 학기 동안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글이라는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내용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형식에만 집중했냐 하며는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리고 돌아와선 영미산문(A0), 미국문학특강(B0)에도 도전했는데 성적보다 일단 낙제(사회학의 이해......)수준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감격스러웠다. 영미산문에서는 한 번 과제로 제출한 글이 1등으로 뽑히기도 했고, 미국문학특강은 수업 뒤풀이에서 교수에게 따로 격려를 받았다. 아직 글을 풀어가는 능력이나 사고의 예리함은 한~참(벌게진 얼굴로 굳이 강조하심) 모자라지만 문장이 좋고 무언가 매력이 있다고. 


 문어는 왜 아직도 잊을만 하면 꼭 한 번씩 꿈에 나오는 걸까. 지금은 백지를 보고 패닉하는 수준에서 벗어났고, 글쓰기 과제는 꼬박꼬박 기한을 맞춰 해내고 있으며 성적도 나쁘지 않다. 아무도 내게 글을 잘 쓴다고 하지 않지만 가끔 내가 썼던 글을 보고 흐뭇해 할 때도 있다. 자기확신이라고 해야 할지...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나, 했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아직도 글에 집착한다는 점에선 예전과 같으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글에 대한 자존감?이 갈대처럼 수시로 나부낀다는 거다. 어디서 봤는데 '자존감이 낮다'라는 것은 항상 자존감이 낮은 것보다는 자존감이 불안정한 것에 더 가깝다고 했다. 어떨 땐 좀 괜찮은 것 같고, 아 이 정도면 잘 썼지 싶다가 진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멘탈이 깨져서 내 글이 참을 수 없이 형편없어 보이고, 스스로 잠시 우쭐했던 마음이 창피하고 괴로워진다. 학교에 다니면서 문제없이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뿐이지, '글'에서 받던 스트레스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같은 또래인데 저사람은 도대체 뭐지?싶을 만큼 독서량이 방대하고 지적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보고, 다시 몇 개월간 일기든 뭐든 한 줄도 쓰지 않던 적도 많았다. 몇 문장 채 쓰지 않았는데도 열등감에 내가 써낸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몽땅 지워버려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럴 땐 실제로 글이 못생겼던 것 같다.


 이제는 글이 문제가 아니고, 글에 드러나는 사고의 수준이 문제인 것을 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안정도 찾았다. 나는 저 사람들만큼 많이 알지 못하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지만 무조건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은 저 길이 아니지만, 합리화를 하자면 내가 지향하는 방향도 아니다. 나는 다행히 내게 적합한 전공을 아주 잘 택해서, 저런 무시무시한 고뇌의 늪이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다. 여기선 많은 것을 객관화해서 계량할 수 있고, 무언가를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이 좋다. 그리고 내게 항상 열등감을 불러일으켰던,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저곳은 여유가 날 때 들여다보며 새로운 인식의 기쁨을 느끼는 데서 만족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면을 풍부하고 고유하게 가꿔서 자기만의 세계를 다져온 사람을 만났을 때 대등하게 소통할 수 없다는 점 정도. 과부하가 걸리는 내가 딱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 또한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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