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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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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가 좋지만 서울 시내에서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건 아쉽다. 이건 눈으로 볼 때 보다 사진기를 들이대면 확실히 느껴지는게, 각종 구조물 사이로 하늘은 손바닥 만큼만 겨우 드러나고 사방에 치우고 싶은 방해물들이 한가득이다.... 이 날도 하늘 빛과 구름이 예뻤는데, 구도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사진이 이렇게 됐다.




이 날도 마찬가지...... ㅎㅎㅎ.... 주변의 구조물들과 항상 하늘이 잘 어우러지는 건 아니다.




빨간 불과 그럭저럭 깔맞춤




붉은 빛을 넣으려다 보니 할 수 없이 못생긴 나무가지들이 빼꼼...




구름이 파도같아서 찍었는데... 이도저도 아닌 구도




새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이 예뻤는데... 이도저도 아닌 구도2




 나무가지 때문에 하늘에 두드러기가 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와중에 달은 예쁘다. 


 요새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두 눈으로 세상을 담으라는 말이 많지만, 나는 내 앞에 놓인 순간순간의 장면을 갖고 싶다. 뭔가를 포착하려는 마음은 글쓰기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사진도 유난스럽지 않은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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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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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례행사를 맞이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의자는 옷걸이로, 책상은 온갖 물건을 늘어놓는 선반처럼 썼었는데 싹 치우고 빈 책상에 앉는 느낌이 새롭다... 좋다ㅎㅎ. 정리중 발견한 메모에는 '우리는 얇게 썰린 소세지가 생각할 수 있다면 생각할 법하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더 나을 것도 없다(Nous pensons comme un saucisson coupé en tranches pourrait pensait, s'il pensait. De fait, nous en valons guère mieux).'라는 말이 있었다. 메쇼닉이 인간 사고의 분절성에 대해 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얇게 잘려진 소세지'라는 비유가 진지한 책에 나오는 게 귀여워서 적어놨던 기억이 난다. 


 쌓여있던 잡동사니 중에는 '여자없는 남자들'이라는 책도 있었다. 밥 잘 먹었다며, 한적한 영풍문고에서 책구경하다 선물받은 소설이다. 내 주위 아무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혹시 내가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처럼 망상으로 모든걸 꾸며낸 건 아니었을까, 라고도 생각해봤는데 책이 딱 나와서 웃음이 났다.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고도 한참을 속상해하고 아쉬워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드디어 이게 지나간 일이라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사랑? 호감? 뭐든 관계를 지속시키는 그 감정이 동시에 끝나지 않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치만 그 사람은 짧은 시간동안 내게 많은 것들을 남겼다. 꼭 고통을 통해서만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불안만이 생산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 원초적인 무력감, 고독감이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건강한 방법으로 나를 이해하고 가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을 모두 사용하고 나누는 관계에서는 편안한 결속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회의를 덜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취향이 있는 사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의 차원과는 달리 관계 자체에 대한 방향감각, 지표가 생긴 것 같다. 책은 책장에 잘 꽂아 두었다.




 전 남자친구가 준 귀요미. 사실 한 사람을 빼고는 많은 이들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걸 발견했지?'에서부터 '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필요는 없었는데'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마음에 별 감정이 일진 않는다. 무슨 회상이든 항상 마지막엔 그 사람들은 나와 역할극을 하면서, 그걸 짐스럽게 여긴 것 같다는 인상으로 연결된다. 온전히 상대방과 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건 불나방같이 무작정 들뜬 마음이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빠져드는 상태, 꼭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하는데 자주 나만 사춘기 문학소녀 감성에 빠져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곤 했다. 다들 한 걸음 정도만 발을 뻗었고, 나머지 한 발은 제자리에 꽉 디뎌 고정하고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 탓만 하려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나와는 다른 나름의 가치체계가 있었겠지. 이런 저런 선물이 남았고, 다양한 체험을 했고, 그래서 그들과의 관계는 지난 세월을 가늠할 때 연도에 우선해 시기를 나누는 기준이 됐지만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선 가치관에 통합할 만한 인식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반면, 가장 오래만나서인지 가장 가까웠어서인지 X는 내게 첫번째 레퍼런스가 됐다. '관계'하면 항상 떠오르는 참조점.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는 법도 학습이 필요한데, 내가 딱 그랬다. 뚜렷한 이유나 목적없이 누군가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그 전까진 몰랐다. 누군가 다가오면 나를? 왜?? 착각일거야. 금방 실망할거야. 라는 생각에 항상 겁부터 먹고 도망다녔는데, 꾸밈없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그런만큼 그 만남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이 됐다.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집을 나오면 볼 수 없어도 책상이 그 자리에 계속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 사람의 인생? 머릿속? 마음 그 어딘가에는 내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피폐한 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많이 밝아졌다. 사랑받는 경험을 통해서 건강해지는 것 말고도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면 안된다는 것, 아무리 가까워도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처럼 관계에 중요한 것들을 많이 깨달았는데, 나도 그사람에게 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내게 해준 만큼 그대로, 상처와 결핍까지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나서 건강히 잘 살았으면 좋겠다.


 과거의 경험을 모두 더한다고 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경험으로 얻은 것들은 나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인간과 관계, 삶에 대한 지혜는 어느 책을 펴도 조금씩 찾을 수 있지만 머리속에 글자로 돌아다니는 그 지식과 달리 경험으로 얻은 인식은 내 안에 새겨진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모두가 선뜻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내 경험과 생활방식을 토대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는 것 부터가 절대 쉽지 않다. 스무살보다 서른살에 훨씬 가까운 지금은 허우대가 멀끔하다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무작정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다. 이 문화 안에서 짜여진 대본을 따라가는듯한 그런 관계는 더이상 맺고싶지 않다. 기꺼이 몸을 던져 나름의 시행착오와 고민을 겪어온 사람, 그래서 사람도 삶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에 다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똑같이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비관이나 회의, 냉소에 젖지 않고 그 무의미함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사람. 그러니까 적어도 이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그런 다짐같은 믿음을 향해있는, 냉소보다는 미소에 더 가까운 사람. 경험과, 경험에서 비롯한 가치관과, 가치관에서 뿌리내린 믿음이 없으면 흔적없는 관계만 되풀이 될 뿐이다. 


 나는 아직도 못난이 우울증 환자지만... 사람들을 겪으며 모난 구석을 부지런히 깎아냈고, 겁먹지 않고 한 발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나이가 들고 꼬부랑 노인이 되어도 항상 인간 됨됨이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원만하고 차분하고 일상의 소소한 지혜가 많은 사람. 그리고 관계를 맺게 된다면 연인이든, 남편이든, 자식이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항상 타인임을 상기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싶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모두 항상 생생하도록. 책상을 치우다가, 토막난 소세지같은 생각을 하다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것. 거기에 더해 조금 부족한 연구자가 되더라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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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써지는 것, 아니면 나도 모르게 쓰게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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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한 시간 반은 지난 것 같았다. 마침 창밖으로는 해 지는 하늘의 색이 너무너무 예쁘게 보여서, 당장 뛰쳐나가 빛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었다. 교수님의 말을 곱씹어 생각하는 중이 아니라 그냥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창밖을 쳐다볼 순 없었다. 눈길을 줄 때마다 변해있는 하늘빛에 마음이 술렁술렁... 사진을 찍고 싶은 장면이 눈에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마침 논외로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교수님은 눈물을 감동으로 읽으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석사 논문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최대한 빨리 쓰고 치우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생각만 해도 창피한 출간물이 쌓이는 게 싫었다. 흑역사는 지금도 이미 많다. 세상 사람들은 물론 당장 내 주변 사람들의 절대다수도 읽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 이름을 달고 나온 것에는 떳떳하고 싶었다. 잘 쓰려는 욕심이 아니고, 그냥 막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를 위해 교수님은 도움이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일단은 논문에 적합한 언어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일상어로 쉽게 쓰려는 마음이 너무 앞섰는지, 애기같은 표현이 꽤 많았다. 그리고 언어의 격, 스타일 말고도 학문적인 엄밀함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지적받으며 놀랐다. 이를테면, '문장이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을 쓴다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했다. 언어가 표현하는 상황의 맥락이 자연스럽다는 것인지, 언어의 형식이 자연스럽다는 것인지. 여기서 선택을 하고 나서도 자연스럽다는 것이 또 정확히 무엇인지가 문제였다. 1. 언어가 자연스러운 것은 읽기 속도로 측정할 수 있다, 2. 빨리 읽힌다는 것은 의미 처리가 빠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3. 그것을 곧 이해가 쉽다, 자연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정리해야 넘어갈 수 있었다. '피험자와 문항별로 반복측정분산분석을 실시했다'라고 쓸 수 있는 20페이지짜리 소논문과 msec을 밀리세컨드, 천분의 1초 단위라고까지 설명해야 하는 학위논문은 이렇게나 다르다. 피곤하기도 한데, 확실히 많이 배우고 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 정말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는데, 그것들을 다 깨끗이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신중한 태도를 일상에도 끌어와야 할 텐데, 내가 했는지 기억도 못할 말을 생각없이 뱉어내는 건 나아지질 않는다...)


 교수님은 학생의 지도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시는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으나, 그렇게 단순하게 마음이 다져지진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것은 맞지만 내가 써낸 내용의 흐름, 논리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교수님이 부족해서는 절대 아니고, 내가 잘나서는 더더욱 아니고... 전공분야가 너무 달랐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받아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쓰면 자세하고 친절한 논문이야 되겠지만...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 구성이 적절한지의 내용에 대한 책임은 홀로 져야한다는 것이 막막했다. 사실 그냥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는 건지, 의미가 있는 건지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확신을 줄 수 없다는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런 책임의 무게를 지기에는 좀 이른, 그냥 떨래떨래한 학생인데. 당장 봄이 되면 비전공자이긴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들을 상대로 내가 쓴 것을 지키고 설득해야 심사를 통과할 수가 있다. 안 떨고 차분하게 말이나 할 수 있을지. 아무튼, 교수님이 시간만 내주신 게 아니고 정말 마음을 써주시는구나, 하고도 느껴졌다. 논문의 지도가 끝나고도 박사과정과 그 이후의 취업계획까지 이야기와 격려와 조언이 이어졌으니. 교수님이 내게 갖고있는 이해(손익)를 분리해서 따지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긍정적 평가와 지지적 개입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치만 이해가 많이 걸려있긴 했다. 교수님은 바로 당일에 내게 부탁하실 번역거리가 있었고, 올 해에도 큰 공동연구가 걸려있었으며, 아주 길게는 '제자'가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감사일기같이 되었지만 각종 부당함에 초연해졌을 뿐 억울한 일도 많다. 뭐, '인간이니까'를 붙여서 생각해보면, 모든 상황을 내게서 분리해놓고 영화나 소설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많지 않다. 아무튼 두 시간 반도 넘고, 날이 아주 깜깜해져서야 연구실을 나올 수 있었다. 끼니를 대충 때우고 헬스장에서 근육을 혹사시켰다. 


 한동안 입안을 맴돌던 영화 러시안 소설의 포스터 문구, '내가 쓴 거... 한 번 볼래요?'가 싹 내려갔다. 술로 갈증을 채우고, 새벽 늦게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왔다(한 달만이다!). 영화에 아주 잔인한 장면이 많았는데 옆 사람을 붙들고 싶은 마음을 잘 참았다. 요샌 눈물이 많아서 걱정인데, 결단력에 문제가 없는 걸 보니 우울이 온 건 아니고 이상한 감상병이 도진 것 같다. 노인을 보면 저 사람도 한때 어린이였겠지, 싶어서 눈물이 나고 애기를 보면 쟤도 늙어서 꼬부라지겠지, 하고 눈물이 난다. 해가 질 때 하늘빛이 예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북한 고위 장교의 얼굴이 좋아서 눈물이 났다. 설에는 이모부의 말에 상처를 받아 몰래 엉엉 울었다. 당연히, 영화에서 이병헌의 팔이 잘리는 장면을 보고도 잠깐 울었다. 일기를 훑어보며 일상의 기록은 겉멋만 빼면 역시 소중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문장을 쓰면 모든 생각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한발 물러서서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생각이 들기 전에 먼저 쏟아져나오는 말들만 적기로 했는데.


 어제는 밤중에 아무 전조 없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종종 있는 지끈한 두통이 아니고 오만상을 찌푸릴 만큼 아파서 뇌에 중병이라도 생겼나 싶었다. 수면제랑 두통약을 먹고도 한참을 잠 못 들었다. 이렇게 아플 때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인상을 펼 수가 있다. 불도가 깊은 큰스님인 마냥 그냥 고통이 거기 있구나, 그렇구나, 이 감각을 '아프다'라고 생각할 것은 무엇인고, 그냥 이 느낌은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마음을 놓아야 가만 누워있을 수도 있다. 문제가 생기면 응급실에 가져가려고 먹은 약을 모두 주머니에 챙겨두고 거실 소파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아침 일찍 온 아줌마는 들어가서 자라며, 새벽까지 티비보다 잠들었느냐며 웃었다. 그날도 그렇게 천하의 백수 게으름뱅이가 됐다. 근데 진짜로 턱이 두 겹이 될 것 같다. 그 이후로 두통의 기운은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언제 엄습할지 몰라서 아주 조심조심, 내 비유를 맞추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모두 하는 걸로. 그런데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보다 해치우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적다. 그래서 오늘도 늦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우울이 가시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다.


 며칠 전 연구실에서 봤던 노을과 쓰고있는 논문까지는 또렷한데, 다른 모든 사건들은 단편적으로 두서없이 뒤죽박죽이다. 약간은 무섭고, 혼자인게 좋은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일기는 일기장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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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해

2016.01.01 05:46 - oui?

 열두시 이전에 자는 날은, 꼭 새벽 세시쯤 잠이 깬다. 그리고는 해가 뜰 때까지 다시 잘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수면제 한 알도 아무렇지가 않다. 그러면 그 날은 좀비처럼 보내든지 아침에 잠들고 오후 늦게 일어나서 괴로워하든지다. 오늘은 두시부터 뒤척였는데,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꿈이 너무 많아서 피곤하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기름지고 두꺼운 하얀 생선 초밥... 빌딩... 손바닥... 얕게 자다가 깰 때마다 시계를 봤는데, 20분, 15분씩밖에 지나지를 않았다. 세시간 뒤 할머니 댁에 가야해서, 그냥 부엌에 나와 불을 켜고 앉았다. 세뱃돈 받을 생각하니까 피곤 그쯤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ㅎㅎ.


 예전에 발달 교과서에서 보고 귀여워서 사진으로 찍어놨던 인터뷰 내용이 있다. 피아제가 세살배기한테 질문하는 내용. "Where does the dream come from? - I think you sleep so well that you dream. - Does it come from us or from outside? - From outside. - When you are in bed and you dream, where is the dream? - In my bed, under the blanket. I don't really know. If it was in my stomach the bones would be in the way and I shouldn't see it. - Is the dream there when you sleep? - Yes. it is in the bed beside me." 교과서는 animistic thinking이 애기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다른 모든 것들도 자기와 같은 감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애들이 현실에 대한 관찰력이 부족해서, 나와 세상을 분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이 애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안돼, 그러면 책상이 아야!해요', '저기 햇님이 우리 따라온다 빠빠이하자 빠빠이', '응? 음... 비는 땅이 목마르다고 해서 하느님이 물주시는 거야' 등등등...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옷을 골라두고 미리 씻어야겠다. 과식을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붙는 옷으로. 낮에 사람들이 화투칠 때 몰래 구석에서 좀 자야지. 




2015년의 마지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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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년 만에 귀국한 친구를 보러 시내 번화가에 나왔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궁금했던 화장품을 구경하러 백화점에 들렀다. 콕 집어 두 가지 제품을 보려던 건데... Dolce Vita는 내 얼굴빛에 안 어울렸고 Charade는 몇 달째 품절이라 구경도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식은 살 수가 없었고 달콤한 인생은 내게 어울리질 않았다. ㅎㅎ. 그래도 굴하지 않고 Audacious 라인의 립스틱을 샀다. 점원은 대담한 립스틱을 입술의 안쪽에만 조심조심 풀어가며 발라주었다.


 이 휘황찬란하면서도 시장통 같은 백화점이 답답해서 서둘러 쇼핑을 마쳤다.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몇 주만에 재고가 들어왔다는) gypsy를 같이 계산했다. 화장품의 색상 명은 회사가 팔고 싶은 어떤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일 텐데, 꼭 말장난이 아니어도 대리석과 샹들리에가 들어찬 고급 상점에서 사람들이 집시 여인의 입술 빛깔을 따라 하려고 돈을 쓰는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물론 나도 이 재미있는 부조화를 구성하는 어엿한 일원이다. 내 환상 속의 유대이지만, 게다가 별로 고상하지 않은 집단이지만 어딘가에 속한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잘 놀고, 공부도 하고 새벽 늦게 집에 들어오는 길, 백화점에서 들었던 외국어 단어들이 제멋대로 뒤섞이다 '달콤한 가식과 대담한 집시의 인생'이라는 문구가 됐다. 오늘 본 택시 아저씨가 사람이 공부를 너무 하면 이상해진댔는데 맞는 말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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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지는 아마 아무도 모를 거다. 항상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는, 늦지나 않으면 다행인 덜렁이 이미지인데 나는 사실 뭐든지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다. 설거지를 하면 뽀득한 식기를 줄 맞춰 세워놓고 싶고, 공문 하나를 써도 군더더기 없이 내 맘에 딱 맞는 문장을 쓰고 싶다. 온전히 나를 위한 행동들은 아니고 어느 정도 남의 인정을 기대하고 하는 건데 사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다. 아무도 남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쏟지는 않으니 뭐, 그런 칭찬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다. 근데도 사소한 것들에 계속 신경 쓰게 된다. 줄 세우고 정리하고 통일하고 다듬고... 이 말이 안 맞는 상황이 뭔진 모르겠지만 이럴 땐 내가 남같이 느껴진다. 내가 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될 때?


 욕심은 욕심인데 여기에 소심이 더해져서ㅡ 이게 항상 피드백이 이뤄지는 연구로 넘어오면 뭐 하나 제출할 때, 보고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둥둥 떠올랐다가 낮은 평가, 혹은 무성의한 답변이 나오면 추락하게 된다. 띠걱띠걱 천천히 올라가다 예고 없이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처럼. 고작 석사생이 몇 시간(남짓) 생각해서 또 하나의 자료 해석 가능성, 방향,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뿐인데 피드백을 기다리는 동안 칭찬이 마치 당연히 눈앞에 있는 것 마냥, 욕심이 가요 프로그램 1위 후보만큼이나 부푸는 거다.


 교수는 바쁘다. 바빠서 학생의 연구에 대해 샅샅이 파악할 여유나 생각해볼 시간이 없다. 공동연구는 이를테면 교수랑 같이 김밥을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 대충 '야채 김밥을 한번 만들어보지'하는 식으로 주제가 주어지면 밥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학생이 속 재료를 준비하고, 교수는 홀끗 보고 들어갈 것들을 골라주는 식이다. 맛있고 신박한 김밥을 만들려면 새로운 재료를 적절히 섞어야 할 텐데 김밥을 잘 모르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좋아 보이는 재료는 일단 다 구해서 손질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일은 학생이 하고 판단, 결정을 교수가 하는 식이라 엉뚱한 재료를 내놓는 걸 무서워하면 안 되는데, 많이 생각해서 아이디어, 분석, 해석을 많이 내놓을수록 배우는 건데 소심한 나는 선택받지 못한 그 아이디어들이 너무너무 창피하다. 아직도.

 

 오늘은 간단히, 피험자들에게 나눠줄 사후설명서를 써서 확인을 받으려 보냈는데 칭찬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더라도 무난히 통과는 할 줄 알았던 것에 "politely, you are absolutely crazy for writing so much - what you wrote is only interpretable to linguists!"라는 답을 받았다. 뭐든 평가는 내가 만들어낸 아이디어, 서류에 관한 것이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2년 동안 되새김질해왔지만 아직도 엉뚱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창피해서 마음이 쿵덕쿵덕 한다. 게다가 연구는 경험이 쌓인다고 딱히 쉬워지지도 않는 것이 교수마다 절차와 스타일이 다르다. 그리고 연구가 쌓일수록 비전문가가 이해하게끔 기술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한두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 코앞에 일이 잔뜩 쌓여있어서 이런 감정에 휩쓸릴 시간이 없다. 그냥 집에 들어올 때쯤 잠깐 '뭐지 이 병신은...' 뭐 그런 기분. 병신같긴 한데 좀 귀여운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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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01:46 -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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