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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15. 2. 12. 23:20



몇달짼지 짧으면 하루, 길면 일이주 간격으로 아줌마가 바뀌고 있다. 이사후 겪는 아줌마 과도기. <매니저님>이라고 불러달라던 칼같은 아줌마도 있었고, 커피를 두번 권하니 <아 됐다고~!>하던 호탕한 아줌마도 있었고, 중얼중얼 혼잣말에 눈빛이 흐릿했던 아줌마도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드디어, 적당히 야무지고 적당히 주책맞은 평범한 아줌마가 왔다. 들릴락 말락한 '요'를 끝에 붙여가며 마주칠 때마다 안어색하게 한마디씩 건내던 아줌마였는데, 퇴근전 현관까지 배웅나가는 길에 뜬금없는 이야기. 


 이 아줌마가 네달째 다니고 있는 성북동집에는, 큰 집에 할머니랑 손녀랑 딱 둘이 사는데 그집 손녀가 서른이 됐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미국에서 공부를 너무 하다 와서 아주 이상해졌다는 이야기. 현관문을 닫을때까지, 그 아가씨가 외출도 일절 없이 잠만 자다보니 살도 찌고 공부때문에 아주 망가졌다는 내용이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되는 것을 들어야했다.


 공부를 너무 하다 이상해졌다는 남의 집 딸 이야기가 머리속을 맴도는데 창밖으론 약올리듯 해가 아른거렸다. 나는 이리저리 배회하며 이방에 누웠다 저방에 누웠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해질녘에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아 우울해서 지난 한달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지금은 먼저 삶의 의욕을 찾아야겠다는 말을 지도교수에게 꺼내 기어이 공식적으로 모든 작업을 중단했다. <우울하다>라는 말이 갑자기 어디서 나왔는지, 무턱대고 우울하진 않았는데 단어를 뱉고보니 정신이 상한건 맞는듯 했다.


 일년 내내 건강하고 싶고, 앞으론 무탈히 꾸준히 살고싶다. 하지만 일단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이번달내 언젠가는 병원에 가보는 걸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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