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 al Fine

일기

2013. 2. 3. 05:01




병적인 부분을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황홀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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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는 나의 지나친 우울감이나 불안감, 공황상태 같은 것들을 이상스럽게 여기지않았다. 새벽 몇시에 전화를 하건 내 이름을 더해 괜찮아 괜찮아,라며 다독이는 X의 나긋한 목소리에 그 모든 것들은 눈물 방울방울로 녹아내리는 듯 했고, 나는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순간순간 느끼는 공포나 불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X는 어쨌든 내게 정신적으로 아주 연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를 북돋아줄 줄을 알았다.


하지만 의존이 달콤한 만큼 절제는 어려워졌다. X의 헌신, 이해, 지지와는 별개로 나의 인간적인 결함은 X를 통해 심화되어갔다. X의 위로 덕분에 나는 불필요하게 많은 관심을 나의 정서적 문제에 쏟게 되었고 그만큼씩 더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더해갔다. 차곡차곡.


그런 까닭에ㅡ 나는 나의 (혹은 서로의) 정서적인 문제들을 공유하는 것이 관계에 좋지만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에 관한 모든 욕심을 버렸다. 나의 문제는 내가 홀로 이겨내야 할 몫이며 그 과정을 통해 멘탈도 튼튼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해받고 싶은 욕심은 취향과 코드의 영역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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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X는 X 나름의 결핍과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서로가 토해내는 문제들을, 날이 갈수록 질척해져가는 문제들을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결심했었다. 이미 오래전에. <~를 빼고는 정말 괜찮은 사람>은 사실 다른 모든 면에도 불구하고 <~때문에 괜찮지 않은 사람>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을 변하게 하려는 (혹은 변하게 할 수 있다는)생각 같은 것은 관계에 백해무익하다는 점을 마음에 새겼다.


X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고 나 역시 그렇다. X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고, 잊을 수 없을만큼 고마운 사람이지만 이 관계에도 끝이 있음을 받아들일 때다. 아무도 모르게, 서른네달동안 예닐곱번을 되풀이 해온 같은 고민과 결심을 이제 정말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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