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칸

일기

2015. 8. 2. 08:51

 집에 가려고 일어서니 해가 어스름하게 뜬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날이 밝아있었다. 비 내린 뒤라 사방의 나무, 풀잎 위에는 콩알만한 물방울들이 얹혀있었고 약간의 물안개가 언덕, 계단, 차도ㅡ 발닿는 어디에나 서려있어서 마치 꼭 한번도 와보지 않은 산골마을인 것만 같았다.


   우리 아쉬우니까 조금만 더 있어요, 그래요 오늘은 정말 아쉽네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아쉽다'는 말과 나지막한 목소리가 입혀진 그 말의 소리가 좋았다. 밤을 꼬박 새며 나눈 이야기나 간질간질한 취기 모두 불량식품같은 인상이 아니라 더 좋았다. 용기내어 잡은 손이 단단하고 따뜻해서, 이만큼의 기억이면 열시간 비행도 거뜬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아득하게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차가운 새벽 공기와 투명한 안개까지 더해진 자하문 고개 위에서, 말없이 닿은 입술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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