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TECT ME FROM WHAT I WANT

일기

2015. 4. 4. 21:18

 "할 수 있음의 자유는 심지어 명령과 금지를 만들어내는 해야 함의 규율보다 더 큰 강제를 낳는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 수 있음에서 유래하는 강제는 한계가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노력만 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어와 같은 생각이 딱히 누구,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꼬집을 수 없을만큼 만연했고, 그런만큼 내게도 예외없이 이 무궁한 가능성이 스며들어 (무)의식의 어떤 한 기둥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수업에 제출하는 보고서 하나, 기말 발표 하나에 바짝 긴장하며 매달리던 것이 세 학기가 지나 학회에 전시하는 포스터 하나, 학회지에 게재하는 논문 하나로 발전하면서 눈높이가 높아졌다. 나뿐 아니라 수퍼바이저, 어드바이저, 연구실 동료, 부모님까지 모두가 그래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그러니 하나만 더, 한 단계 더...와 같은 응원과 격려를 쏟아부어주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고, 내가 이뤄내는 만큼은 온전히 나의 성과이며 나는 아직도 더 발전할 수 있으니 후속 연구로 논문을 빨리 써내고 외부 교수와의 프로젝트도 잘 해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학생이 되어야지ㅡ라는 상승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가능성으로 충만한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 계속 발전하고 성취해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점심 한 끼 제대로 챙겨먹기 어렵고 항상 엄청난 속도로 걸어다녀야하는 생활을 견뎌왔다. 조교장의 행정업무, 수업준비, 지도교수의 심부름, 공동 실험, 공동 논문이 순서없이 뒤엉켜 떨어지는데 손바닥에, 공책에, 핸드폰에 끊임없이 적어가며 어떻게든 구멍없이 해치워왔다. (무섭게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정도의 노동이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나에게는 일종의 재난상황, 비상시와 같은 삶이었다.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홀로 빈둥거리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이메일과 드랍박스를 붙들어야 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소비, 쇼핑이 주는 만족감이 얼마나 일시적인지에 대해서 말하지만 이렇게 이루어낸 성취도 딱히 더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보트슈즈를 사고나면 밑창이 조금 닳기도 전에 로퍼가 보이고, 러닝화나 바람막이, 왁스자켓으로 물욕이 사방팔방 뻗어나가는 것처럼 지도교수의 인정을 받고나면 다른 교수들의 인정도 받고싶고, 포스터 발표를 하고나면 구두 발표가, 국내 학회지에 다음엔 국제 학회지가 새로운 목표로 떠올랐다. 소비나 성취나, 손에 쥔 것은 금방 시들해지고 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것은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조금 더를 유도하고 격려했다.

 지도교수도, 어떤 교수의 유명한 칼럼에서도, 저명한 학자의 인터뷰도 모두 공부를 직업으로 삼기로 했다면 수도승처럼 매진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누구든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연구를 읽고 쓰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탐구 그 자체가 아니고 대학사회에까지 만연한 성과우선주의("publish or perish")와 그에 지배되는 나의 행태이다. 겨우 이 길의 초입에 들어선 나는 가뜩이나 줏대도 없는데 성과, 성취, 성공의 가능성에 사로잡혀서 스스로를 혹사시켰다. 큰 목적, 그에 맞게 세워진 단기 목표, 그리고 성취동기에 지식의 탐구 자체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뒤섞인 것이 더 위험했다. 나는 균형 잡을 능력이 없었고, 내가 종종 떠올린 그 균형이라는 것도 성취 목적의 안에 갇혀있던 것이었다. 끼니와 일정외에 남자친구와 할 말이 없어지고, 무언가 쓸 거리가 도통 생기질 않는데도 내가 나다운 것을 잃어간다는 인식이 불가능했다. "ㅡ우리는 삶이 어떤 외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오직 삶 자체로 머물러 있는 차원, 즉 삶의 내재성에서 다시 추방당한다."

 나는 사학기에 접어들어 독립적인 연구자로, 홀로 생산하기를 기대받으면서 그냥 작동을 멈췄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무력감에 시달렸고, 우울증에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자기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야하는 새로운 단계의 과제가 내게는 소화하기에 버거웠는데 오히려 눈높이와 목표는 제멋대로 높아지고 성취 욕구는 점점 커졌다. 과잉된 긍정성이 내 욕구를 끝없이 장려했다. 나는 상승하는 욕구와 추락하는 현실의 간극에 대한 책임을 모두 나에게로 몰았다. 나는 충분히 해낼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데 게으름때문에 모든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했다. 지도교수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공부보다는 사람과 삶이 먼저이니 소논문은 없던 일로 하고 졸업논문을 축소하자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나는 축소, 후퇴하는 이미지, 뒤쳐지는 기분ㅡ그 모든 부정성에 나의 충분히 가능한 성공적 미래가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저 높이서 분명히 반짝이는 할 수 있음의 간판을 바라보며 괴로워했다.

 개강 후 나는 외부의 제약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몫일때 나를 짓누르던 무한한 가능성은 정해진 근무시간과 명시된 과제 속에서 사라졌기때문이다. 등록생이 적어 확연히 늘어난 근무일수나 읽기 과제가 쏟아져 나오는 수업 역시 반갑기만 했다. 타의에 나를 내맡기면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한병철은 모든 예속화와 심리화에서 이탈하는 것, 유일무이한 내재성을 찾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 어떤 것에도 속해있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는 이 절대적인 내재성은 마치 불교 사상처럼 공허함을 특징으로 갖는다는데, 나의 인식은 이 해방상태에 가닿질 않는다. 노예는 달리 노예가 아니다. 이미 나의 목소리가 된 모든 명령들ㅡ 발전할 것, 미래를 준비할 것, 몸을 가꿀 것 등과 같은 세속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들을 어떻게 폐기할 수 있단 말일까? '나' 이외의 모든 관념을 등지고 산골짜기에서 면벽수행을 하는 사람, 간단한 육체노동을 신성시하며 현재를 충만히 사는 사람(서칭포슈가맨의 로드리게즈, 혹은 더 나아가 그리스인 조르바)... 그들의 고매한 자유는 내 것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아마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도, 실천할 수도 없는 그런 삶의 형식일 것이라고 위안해본다.

 나는 이 모든 굴레를 그렇게 간단히 집어던질 수 없다. 당장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고, 그저 졸업만으로도 유의미한 것일지니ㅡ하며 방망이 깎는 노인인양 세월아 네월아 한문장 한문장 다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착취하길 그만두는 것이 곧 제자리에 주저앉는 것은 아닐것이다. 나는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나의 원동력의 얼마만큼이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기쁨이고, 또 얼마만큼이 지금 나에게 가장 가까운 세속적 성공의 가능성에서 오는 것인지 깔끔하게 분리해낼 수 없다. 나같이 우매한 보통의 사람에게는 그저 지금 내가 자발적으로 따르는 이 계획, 목표, 가치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고 때때로 경계를 하는 것, 그렇게 방향을 잡는 것 정도면 훌륭한 일일테다. 타의와 속박에 의지할 때, 단편적 감상에 탐닉할 때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을 당장 중지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이 우울병에서 벗어나는게 먼저다. 그래도ㅡ 독서를 통해 바뀐게 있다면 생산을 저해하는 이 부정성을 빨리 제거해야한다는 조급함 정도는 덜어냈다는 것이다. 당분간 나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 내 안으로 향하는 이 시간들에 집중하고 싶다. 나를 키우면서, 조금씩 회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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