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빠이 낭만

일기

2015. 4. 12. 18:02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게 연인을 향한 감정이라면 나는 제일 먼저 인내심과 이해심을 꼽겠다. 이성에게 느끼는 끌림, 설렘, 기분좋음 등은 정말 쉽고 흔하다. 게다가 이 뭉게뭉게 간지러운 느낌은 들고 난 자리가 크게 표나지 않는다. 잠깐 같이 걷던 사람, 때때로 밤중에 통화하던 사람, 어쩌다 입맞춘 사람은 깔끔하게도 내 마음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 반면 누군가 '남자친구'가 되고, 시간을 오래 같이 보내고, 그러다 적당한 거리를 넘어서게 되어 보이지 않던 단점과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구석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이마저도 기꺼이 참아내야지, 하는 마음. 나아가 왜 이런 행동, 사고방식,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싶은 마음이 들 때 나는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구나ㅡ하고 느낀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갈등을 회피하고 싶기 시작할때, 이 골치아프고 기분나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도 싫어질 때, 더이상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될 때 사랑이 식어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이제껏 사는동안 '나'라는 사람의 어떤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야하는 자리는 없었다. 조금 더 따져보면 서로를 속속들이, 혹은 자세히라도 꺼내놓을 자리가 세상 어디에 있나 싶다. 공부나 일처럼 같은 목적으로 결합된 사람들말고, 친밀함을 바탕으로 한다는 친구와 가족끼리도 모두 서로의 꾸며진 일부분만을 겪을 뿐이다. 그래서, 바로 그래서 연인이란 끊임없이 관심을 주고 상대를 온전히, 맨얼굴까지 알아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무의미한 세상, 비슷비슷한 모두(다른 재학조교, 종로구 주민, 여성소비자, 우울증 환자...)에게서부터 나를 구분해내는 사람. 그래서 특별한 관계. 

 그런데 이 모든 생각과 모순적으로, 이제는 그냥 앞으로 인생의 큰 의사결정을 놓고 봤을때 충돌이 없는 사람, 둥글고 착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인간적인 매력, 취향의 섬세함, 생각의 깊이 같은 것은 따지고싶지 않고, 나를 잘 알기보다는 그냥 많이 좋아해주는 사람. 같이 살 사람. 

 선을 봐서 일찍 결혼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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