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일기

2015. 6. 17. 14:46




 그렇게나 많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오천 원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기는 했다. 어느 벽면에나 빠짐없이 빼곡한 글자들이 관람객에게 감상의 '정답'을 주입하고 있는 것만 빼면. 덕분에 눈물이 나는 게 창피하기만 했다. 아, 촌스럽다.

 투명하게, 나를 안팎으로 까뒤집어 시샘할 거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포장에 소질이 있었던가?

 차가 달리는 대로변에서 Bahamas나 Ben Howard같이 낯선 노래들을 들으며 뚜벅뚜벅 걸으니, 시선에 들어오는 풍경이 모두 그대로 영화의 오프닝씬이 되는 것 같았다. 초여름 꽃향기나 해가 지는 중에만 볼 수 있는 검푸아란색, 차들이 내는 적당한 소음, 술기운이 합쳐지면 그 순간만큼은 일체의 잡념에서 해방된다. 이렇게 증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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