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absense

일기

2010. 12. 15. 10:35



 

부재 absence. 사랑의 대상의 부재를 무대에 올리는 언어의 에피소드는 모두 그 부재의 이유나 기간은 어떠하든 부재를 버려짐의 시련으로 변형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1. 사랑의 부재에 대한 수많은 가곡과 멜로디, 노래들이 있다. 그러나 이 고전적인 문형을 베르테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작품에서 사랑의 대상인 로테는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 멀어지는 것은 바로 사랑의 주체인 베르테르이다. 그런데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고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는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 나의 천직은 그 반대로 칩거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고 미결 상태로 앉아있는, 마치 역 한구석에 내팽겨쳐진 수화물마냥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사랑의 부재는 일방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5. 나는 부재하는 이에게 그의 부재에 관한 담론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이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 referent로는 부재하지만 대화 상대로서는 현존한다. 이 이상한 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못한다. 당신은 떠났고 (그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또 당신은 여기 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으므로). 그러면 나는 현재가, 이 어려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뇌의 순수한 한 편린이다.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조작하려 한다. 시간의 뒤틀림을 왔다갔다하는 행동으로 변형시키거나, 리듬을 산출하거나, 언어의 장면을 열고자 한다. 부재는 하나의 능동적인 실천, 분망함 affairement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이 된다. 다양한 역할(의혹 비난 욕망 우울)이 등장하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언어의 연출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를 여전히 믿고 있는 시간과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는 극히 짧은 차이밖에 없다고 한다. 부재를 조작하는 것, 그것은 이 순간을 연장하려는, 그리하여 그 사람이 냉혹하게도 부재에서 죽음으로 기울어질지도 모르는 순간을 되도록 오래 늦추려는 것이다.

 

 

6. 그런데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다. 나는 욕망하며 동시에 필요로 한다. 욕망이 필요위로 내려앉는다. 바로 거기에 사랑의 감정의 집요한 사실이 있다.




 

정신병 환자는 붕괴의 공포 속에 산다고 한다. (이 이외의 증세는 방어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붕괴에 대한 임상적인 공포는 이미 체험한 적이 있는 붕괴에 대한 공포이다(원초적인 고뇌). [........]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이런 붕괴에 대한 공포가 그의 삶을 침식해가는 환자에게, 이 붕괴가 이미 일어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 사랑의 고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랑의 출발점, 내가 매혹되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치러졌던 한 장례에 대한 공포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미 그를 잃어버렸는걸요" 라고. 


*위니콧 : 「붕괴의 공포」『신정신분석학』지, 11호, p.75.

 

Roland Barthes,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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