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반가운건 옷장

일기

2015. 10. 20. 13:09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의 크고 작은 이 길들은 왠지 다 내 것인 것만 같다. 이 길을 꾹꾹 딛으며 빠르게 걸을 때 가장 익숙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내게 고향이란 말은 이 동네의 거리에 연결되어 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쏟아졌다. 비행기에 불편히 앉아 겨우 세 시간쯤 잔 날인데도 어쩐 일인지 몸에 묘한 활력이 돌았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원래 빠르게 움직이며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는 것이라는 메세지가 공기중에 있어서, 매 들숨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go go go go do it do it do it do it하는 목소리가 마치 카페인처럼 몸을 깨워 작동시킨다. 두 달이 넘게 하루도 빼지 않고 입에 넣었던 술 설탕 탄수화물도 딱히 끌리질 않는다. 감정이나 공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쁘지 않다.


 여기에선 사람들이 모두 가면 같은 화장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다. 얼추 비슷하게, 여기선 내게도 커다란 옷장, 신용카드, 깨끗한 욕실, 좋은 침대가 있다. 아무튼 간 나는 이 도시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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