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사람

일기

2015. 6. 5. 02:47



일단 1차 작업 정도가 끝났다. 저녁 늦게 복작복작한 고기집에서 소주잔을 들던 참에 알람 설정해둔 메일이 떴는데, 저쪽 교수님이 말미에 남긴 "Only if I had a graduate student like you, so many interesting things could be done. Excellent work!"라는 말에 한참 핸드폰 창을 들여다봤다. 무엇이든 일정을 앞당겨놓고 재촉하면 그냥 그렇게 되는 줄 아는 순진한 이쪽 교수님 덕분에 며칠째 잠은 3시간정도 밖에 자지 못했고, 특히나 오늘은 물 한병 사러갈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뛰어다녀야하는 바람에 20시가 넘어서야 제대로 된 첫끼를 먹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누군가가 다독여준 것 같아서 마음이 찡했다.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서 그런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방이 쪽 빠졌다. 18%라는 숫자나 가벼운 몸은 마음에 들고 정신도 내 맑지만 사지에 기력이 없는게 걱정이다. 오늘은 특히나 오랜시간 공복이었기 때문일테지만 식탁위에 놓인 부추, 석쇠위의 버섯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리는게 힘겨워 헛웃음이 났다. 숫가락을 입에 넣는 과정이 길고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이 모든 상황, 지친 내 마음을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과 공유할 수 없는게 문득 서글펐다. 그래도, 동시에 말없이 고기를 구워주는 후배나 가볍게 말붙여주는 동기가 고맙기도 하고. 이게 내 인간관계의 최선인걸까...


 짭짤하게 구워진 김치, 노릇하게 익은 버섯, 아삭한 부추, 촉촉한 삼겹살 한 젓갈마다 소주 한 잔씩을 삼키니 몸이 뜨거워졌다. 기분좋게 대화에 참여하려는데 친구와 후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자니 다시 마음이 착잡했다. 곧 결혼을 앞둔 친구, 곧 유학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후배 모두 <여자들>이란 단어를 안좋은 요소들의 집합인 것처럼 쓰고있었다. 내 여자친구는 안그런 줄 알았는데 결혼 준비를 하다보니 역시나 좀 그렇더라, 주위 <여자들>때문에 물들었다, <여자들>은 대체로 이상한 것에 집착한다, 비이성적이다, <여자들>때문에 피곤하다...


 야, 잠깐만.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렇게나 많은 속성을 똑같이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너네 지금 <여자들>이란 단어를 무슨 전염병만큼 부정적인 뜻으로 쓰고있는걸 알고 있는지 물어봤지만 얘들은 문제를 인식하질 못했다. 니가 보고 듣고 겪은 바가 그렇다 한들 바로 일반화해도 된다고 생각하냐, 내가 남자들은 다 찌질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변태적이다,라고 말하면 너네는 기분이 어떻겠냐라고 묻자 모두 그냥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나를 급하게 달랜다고 하는 말은ㅡ "아 그러니까, 누나는 그런 <여자들>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지만," 혹은 "그래 너같이 억울한 애들도 있는데,"... 내 친구와 후배는 모두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나 무지몽매하다는 것에 말문이 막혔다. 술기운 덕분에 막막함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부풀어올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뛰어넘을 수 없는 소득격차에 좌절하는 사람들, 경제적 약자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지고 학벌, 인종, 동성애등 각종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의식있는 사람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여자의 삶, 여성으로서 마주치는 차별과 고충, 성관념에 대한 부조리를 이야기하면 피곤하고 드센 사람이 된다. 사회에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만연한지, 그것이 왜 잘못됐는지, 여성이 어떤 차별과 피해를 겪는지에 대해 말하면 남자들은 놀라울만큼 이해를 하지 못한다. 순진한 얼굴로 신기해하거나, 알겠는데 어쩔수 없지 않냐며 무관심하거나, 대다수의 여성들이 ~하는것이 현실이라며 분노하거나, 도대체 왜 난리냐는 얼굴로 주제를 회피하거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설명하다보면 스스로가 싫어진다. 틀린건 내가 아니라 저들인데,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이상한걸 따지고드는 피곤한 여자> 혹은 <페미니스트>가 되버린 내가 싫다.


 세상의 온갖 차별은 약자가 되어봐야만 알 수 있다. 진로에 대해 별말 하지 않은 연구실 동료(남자)는 당연히 박사 포닥 연구원 교수 등의 코스를 밟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것에 반해 나는 주위에서 끊임없이 점검을 받는다. 박사/유학을 갈거냐는 것에서부터 철저히 사적인 영역의 질문까지도 공부를 그만두지 않을거라는 믿음을 쌓기 위해 대답해야 한다. 남자친구는 뭐하는지, 집안은 어떤지, 결혼할 생각은 있는지, 결혼하면 어떻게 꾸려갈건지ㅡ 가 모두 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게 교수들의 rationale인데 도대체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그것도 <인문학>을 한다는 곳에서 <현실적인 고려>를 해야한다는 말로 이렇게나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는 내가 여기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한다.


 무슨 얘기가 오가든 술 한잔에 헤- 웃고 빈틈이 많은 사람으로, 혹은 어떤 질문이든 깍듯하게 대답하는 학생으로 남아 마찰없이 편하게 살고싶지만 나이가 들고 내가 내 인생에 진지해질수록, 스스로 책임지고 앞길을 개척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할수록 작은 상황 하나하나가 넘을 수 없는 장애물로 느껴진다. 피곤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적당히 동조하고 문제를 제기할 용기가 없어 그냥 웃고 마는 나는 꺾여진 갈대, 비맞은 쭉정이가 된 느낌이다. 이런 순간엔 입을 열든 닫든, 반짝이는 장신구를 걸치고 몸을 강조한 옷차림의 내가 싫어진다. 집이나 학교나 친구들 사이에서나ㅡ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없는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그래서 나는 별수없이: 미안, 내가 너무 욱했네. 요새 일이 많고 힘들어서 너네한테 괜히 짜증냈어. 미안해 어색하니까 짠하자ㅋㅋㅋ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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