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13. 10. 15. 00:57


가뜩이나 침구도 벽도 하얀색이었는데, 커튼마저 옅은 흰색이라 해가 그대로 비쳐들어왔다. 핸드폰 카메라를 갖다댔으면 벽지나 침구나 디테일은 모두 날아가고 분명 온통 하얗게만 나왔을만큼 방은 밝았다.

살다보면 낯선 사람인데도 내 몸을 만지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들이 있다. 자세, 근육, 경직, 교정 같은 말들이 만드는 맥락 안에서는 이렇게나 쉽게 경계가 풀어진다. 겨우 말 몇마디 해본 사이인데. 몇 년을 알고지내도 보통은 손끝 하나 닿지 않고 지내는데.

닥터 TJ Eckleburg의 거대한 눈, 꽤 가늘고 하얗지만 털이 촘촘히 누워있는 팔, 눈 부시게 빛을 반사해내는 하얀가운, 아무렇게나 말린듯한 머리카락. 손가락... 특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는 손끝. 보이지 않는 손끝.

덩달아 스스럼없는 척, 가만 앉아 머리속에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만져봤다. 뗐다- 붙였다- 머리 속으로 큐비즘풍의 꼴라주를 완성한 어느날 오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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