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xi driver, you're my shrink for the hour

일기

2013. 9. 2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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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라 그런지, 뭘 해도 도시가 편하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거대한 공간에선 경외감과 동시에 무력감이 느껴진다. 내 몸으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큰 산이나 넓은 숲, 호수, 절벽... 자연에는 감각도 감정도 없어서 그 조용함이 평화롭다기보다 매정하게 느껴진다. 


기쁠 때나 불안할 때나, 나는 대로변의 벤치에 앉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 종종 도시의 비인간적인 면에 대해 말할 때 꼽히는 빌딩 숲과 가로등, 자동차 불빛들에서 오히려 온갖 번민과 정념이 느껴진다. 아주 인간적인 것들.


많고 많은 시내의 큰길 중에서도, 나는 신문로가 좋다. 특히 역사박물관 버스정류장 뒷편의 걸터앉을 수 있는 낮은 담 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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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는 아주 동떨어진 공부를 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집안에 여유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말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내 처지에 대해 평가를 내려준다. 너는 정말 좋겠다. 너는 복받은거야. 시집 잘 가겠네. 그리고 거기에 보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늘어놓는데 이상하게ㅡ 그 말들은 무언가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신의 힘듬을 어떤 무기처럼, 핑계처럼 사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실은 쫓기는 마음으로 한두시까지 도서관에서 건조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생활이지만 나는 그냥 '네 저는 시간 쓰는 것도 자유롭고 요새 좋아요' 하고 웃고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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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하루정도를 제외하고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개인적인 대화를 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점점 사회성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나만의 세계에서 버둥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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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진짜 사랑'을 하고싶다는 말이 들릴 때 마다, 요새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와 깊게 관계하고 소통하고ㅡ 결국은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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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여간, 가장 가까이서 부대끼고 지낸 그룹이 있다. 동기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친구라고 부르자니 뭔가 어색한. 카톡방의 인원은 딱 여섯명인데, 나를 빼고는 다 남자다. 힘들 때 의지하거나 마음을 열진 않았어도 항상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 어릴 때 술먹고 치대는 모습을 봐온만큼 허물없이 지냈는데 요새는 이것도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껏, 짓궂은 장난에도 웃어넘겨주는게 얘들에게는 나를 막 대해도 괜찮다는 신호가 됐던걸까? 어제는 한 친구의 생일축하자리가 있었다.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홍대에 도착하니 열시반, 이미 몇몇은 술기운이 올라 신나있는 상태였다. 정말 오랜만에 다같이 모인 자리고, 나도 한 주를 잘 마감해서 어느정도 해방감마저 느끼고 있었는데, 집에 올 때 즈음엔 허탈해 울고싶은 기분만 들었다.


빈정이 상할만큼 놀림을 받았다. 얘들은 왜 정도를 모르나, 왜 잠시를 못참고 시시콜콜 외모를 가지고 이 난리인가. 한참 생각하다가 술에 취해 사회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친구의 말을 듣다 뭔가를 깨달았다. 그 친구는 자리에 있던 각각의 성격에 대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한바퀴를 돌아도 내 이야기는 나오질 않았다. 그 친구의 말에 여기저기서 덧댐이 있기도했고 말이 꽤 길어지는 동안에도ㅡ 아무도 내 얘기가 쏙 빠졌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만나면 낄낄거리는 대화시간의 절반정도는 나를 놀리는데 할애하는 애들이 정작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내 이야기만 건너뛴다는게... 우리 여섯중 나를 뺀 나머지 다섯은 가장 안쪽의 원안에 들어가있고, 나는 그 한발짝 뒤에 혼자 선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동안 제일 가까이서 자주 본 그룹이라, 은연히 이젠 평생 가겠거니하고 생각했는데 계속 가는 것은 그 다섯이고, 나는 곁다리일 뿐이라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짜증과 허무함과 원망이 오늘까지 한켠에서 맴돌았다. 한편으로는 여자 혼자 낀 조합에서 불상사나 없었으니 다행이지, 친구는 무슨 친구냐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꼭 한명한명에게의 서운함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다, 성별의 조합에서 이런 문제의 여지가 있는 것을 모르고 얘들을 제일 가까운 그룹으로 만들어온 내 선택과 지금의 상황이 후회된다.


여자 나이와 외모에 대해 가혹한 말들을 거리낌없이 하는 얘들이ㅡ 유별나게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도 서글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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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정리할 시점이라는 생각은 줄곧 해왔다. 그치만... 나는 내가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 빼고는 별달리 또렷한 생각이 없다. 예의를 잘 차리는 사람? 나를 허물없이 대하는 사람? 나를 자주 찾는 사람? 함께한 추억이 많은 사람?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 조심할 필요 없이 환경이 비슷한 사람?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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