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일의 기록

일기

2013. 12. 11. 23:02



토: 헛구역질과 눈물과 가쁜숨을 뱉어내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만 살고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대로라면 자연히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손, 발, 머리, 몸이 저리는 와중에 심장이 뛰는 느낌은 두드러졌다. 숨이 좀 잦아들면 꺽꺽 울다가, 울다보면 다시 토할듯이 숨이 차다가... 산산히 깨질만한 유리컵, 유리병이라도 내던지고 싶었고 무거운 나무의자나 기타를 부수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역시나 말 한마디 입 밖에 내지를 못했다. 발작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눈물, 콧물, 침, 기침, 구역질, 모두 있는대로 뱉어내고 주저앉아 시계를 보니 한시간 이십분이 지나있었다. 화를 몸이 이기질 못하는 것 같았다. 



일: 정신병원에라도 입원하고 싶었다. 학교도 집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말로 미치는건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닌 듯 했다.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어제같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살짝 개운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수는 없어서 항의하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집이 비는 시간에 잠시 기어나와 귤 일곱개와 식빵 한조각을 먹었다. 나는 계속 화가 나있고 싶었고, 일어날 수 없을만큼 괴롭고 싶었지만 머리와 어깨만 쑤실뿐 어제와 같은 절망감을 다시 찾을 순 없었다.



월: 수업 30분 전에 일어나 양치만 겨우하고 나왔다. 오전내 학부생들의 출결점수 문의, 레포트 제출에 대한 잡다한 변명, 장례에 대한 질문, 개인적인 걱정과 위로를 해치우고 러닝머신 위에서 가까스로 우울을 덜어냈다.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지만 글자만 보일 뿐 뜻이 읽히질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길, 전부터 가보고 싶던 바에 들러 술 한잔을 시켰다. ("이거 좀 독하게 주세요") 종이 한 장 앞에 놓고 한참 낙서를 했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알바는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도 아니고 /또 오세요/도 아니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화: 강사실에서 골치아픈 문제로 약간의 마찰이 있는 듯 했고, 하필 내 근무일과 겹쳐 영문도 모른채 가시돋힌 소리를 한참 들었지만 어렵지도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일상의 다른 많은 일들도 나와는 아주 상관이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언어의 주술관계에 대한 이름 거창한 학자들의 주장이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일까? 또 비모수 자료에 대한 각종 검정 방법들은? 이게 참인지 거짓인지, 얼마나 타당한지, 모두 내 감정만큼 언제 변할지 모르고, 믿을 수 없고, 허망해 보였다. 수업이 취소된 김에 헬스장에서 두시간을 보냈다. 나는 근육의 통증에서 약간의 위안을 느끼고 있다.



수: 시험이 내일이다. 부모의 내적작동 모델과 아이의 애착형성패턴에 대한 부분을 정리하다 울컥했다. 기질, 애착, 정서발달은 접할수록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 키우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가 왜 힘든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적어보려고 해봤지만 글쓰기가 힘들 뿐 아니라...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절망, 괴로움에 대한 기록은 그 순간이 지나야 가능해진다. 가라앉은 마음을 헤집어 이미 저만큼 멀어진 절망과 괴로움을 되살리려 노력하며 그것을 최대한 비장하게, 무겁게 글로 옮기는 행동이 가엽고 우스웠다. 하루종일 샌드위치도 먹고 쿠키도 먹고 커피도 먹고 삼계탕도 먹고 쌀국수도 먹고 콜라도 먹고 감자튀김도 먹었다. 두시간 운동을 하고 나왔지만 배가 한참 나와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시간은 가고... 마음과 배는 무겁고. 나는 주위를 빙빙 돌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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