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일기

2015. 12. 1. 12:59



 커튼을 걷으려 창가에 다가서면 냉기가 확 와 닿는 겨울이다. 뜨거운 물을 끄고 샤워부스를 나가려면 엄청난 결단력이 필요한 계절. 대충 수건을 밟아 물기를 털어내고 방으로 향하는데 차가운 대리석에 발바닥 맨살이 닿는 감각이ㅡ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 꼼꼼, 면면이 느껴진다. 그러면 내 발이 이 몸 끝에 '있다'는 것도 새삼스레 느껴진다. 느껴진다.


 감각과 자극에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빼앗기고 있다. 울 양말의 까슬한 따뜻함이라든가 며칠 만에 비치는 선명한 아침 햇살, 참기름에 부친 두부의 고소함 같이 소소한 감각을 누리는 느낌이 아니고 한잔 한잔 계속 오르는 취기, 감자 칩을 계속 밀어 넣을 때의 숨 막힘, 팔다리가 풀릴 만큼 격한 운동(속죄), 아니면 해가 질 때까지 거실 소파에서 뒹굴며 온몸으로 누리는 엄청난 게으름... 그런 자극적인, 이류의 감각들이다. 일단 최근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사람을 쓸데없이 많이 만났고, 괜히 의미 없는 웃음과 맞장구를 남발했다. 


 약을 끊고 보니 내가 여전히 환자인 걸 알겠다. 정돈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모두 반사작용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주를 버텼는데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약을 반납한 대신 공부를 빼고도 생활의 모든 리듬(잠, 술, 음식, 운동, 소비, 남자)을 망가트린 것처럼 됐다. 둔해진 마음을 그렇게 쉴 틈 없이 발로 걷어차다가 지금처럼, 빛이 보이고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일으켜야겠다. 그치만 그 힘이 생길 때까지, 정신이 계속 맑게 지속될 지를 모르겠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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