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효과

일기

2013. 3. 1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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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G는 한마디로 부자집 사모님이었다. 화려한 차림과 어딜가나 사람들을 부리는게 이미 오래전에 몸에 밴 태도. 항상 먼저 말을 꺼내고, 말을 자르고, 마무리하는. 그리고 G는 내 기준에서 다 쓰지도 못할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울의 가장 비싼 동네를 골라 이사다니며 빈번히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카페를 샀다가, 갤러리를 샀다가... 그런 모든 것들을 소일거리처럼 하는.


G 아줌마. 촌스럽고 정겨운 이름. 이 아줌마는 내가 어렸을 때 부터 우리 엄마에게 '그래 그거 뭐, 사줘라 얘. 요새 애들 다 그래'하는 식으로 내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나는 이 아줌마가 좋았다. (내게는 '첫째는 원래 항상 투쟁을 해야돼. 니가 그 운동화가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한다니까? 특히 니네 엄마같은 사람은...'같이 말하곤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줌마의 이름을 그 집 언니오빠들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혼 즈음해서 개명을 하셨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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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파리에 살던 때에 이 아줌마가 여행삼아 우리집에 온 적이 있다. 베란다에서 같이 포도주를 마시는데, 시원하게 담배를 피며 아 좋다, 라고 말하던 G. 결혼 후 죽 아이들 몰래 흡연을 했는데, 숨기느라 피곤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미 이십대 중반을 넘겼을 때였다.) Wow......


G는 권태롭다는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에 권태롭다기에는 G는 너무 활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내게 권태l'ennui는 모든 외적 지향성을 잃은 상태였다. 굳이 어려운 학자를 들먹이며 이야기하고 싶진 않지만, 사르트르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대자적 존재>라고 한 것에 반하는 상태, 그러니까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상태랄까. 어쨌든 G는 내적으로 풍요로운... 그런 삶을 살아야한다는 말을 꽤 길게 했다. 그리고선 화장을 고치고 <이제 좀 밖을 둘러보러> 가야겠다며 우리집을 나섰다. 이미 도착할 때 가져온 한 묶음의 쇼핑백들을 팔에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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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후에는, G가 사진전을 연다는 말이 들렸다. 알고보니 당시 프랑스에도 사진을 찍으러 왔던 것이라고 했다. 오프닝에서 본 G는 분위가나 표정은 그대로인데 옷 스타일이 굉장히 변해있었다. 털 코트, 빛나는 가방, 높은 구두... 이런 것들에서 왠지 마, 모시 이런 느낌의 소박한 옷들로. 마침 계절이 여름이어서 괜히 더 두드러졌을 수도 있긴 하겠다. 오프닝인 만큼 G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G는 잠깐, 강남의 '문화없음'과 돈 냄새에 질렸다며 조용한 강북에 살고 싶다는 소리를 했다.


갤러리에는 남불 시골 구석구석의 소박하다 못해 간혹 초라하고 어둡기까지한 사진이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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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G는 정말 강북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집도 곧 그 바로 옆으로 이사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이웃이 되고나서부터 왕래가 더 뜸해졌다는 것이었다. 가끔 카페에서 마주치기도, 김치 심부름을 가기도 했지만 예전 같았으면 커피 한 잔 놓고 이야기를 했을 G는, 어딘가 <황급히> <숨기는> 듯한 모습으로 짧은 인사와 함께 나를 그냥 보냈다.


G의 카톡 상태 메세지에는 <보행>,<개방>,<세계>,<현존>,<확증> 같은 단어들이 끝없이 쏟아졌다. G는 모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심지어 철학을.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ㅡ 예전에 듣기로 G는 대학시절에도 엄마의 친구 무리 중 유일하고 또 유별나게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요새 말로 하자면 '취집'이라는 것이 목표여서, 엄마 친구인 의대생에게 공들여 작업한 끝에 제일 먼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는 꽤 공공연했다. 그런 G가, 1/4세기만에 돌연 박사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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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G의 내면작업이 깊어질수록 엄마와 소원해진다는 것이었다. 하필 이 시기에 우리 엄마는 반대로 <외면작업>중이었고,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옷을 사고 멋을 부리고 집에도 치장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었는데ㅡ 서로의 expertise를 나누고 공감대를 확장할 수 있는 더없는 기회로 보이는 이 때 둘은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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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또 다른 아줌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G가 스스로의 깊이없음에 엄청난 자괴감을 갖고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만큼 G는 자신이 <성취>한 현재의 환경과 꾸려온 가정(부유함과 의사남편 의사아들 박사딸...)에 더욱 집착하며 그것을 위안과 자존감의 원천으로 삼았었다고. 그래서 교수인 친구들과도 주눅들지 않고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인데,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로 세운 어떤 균형이 (왜인지 잘 이해하긴 어렵지만) 무너지면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우리 엄마가 그 무너진 관계의 대표적인 예인 것 같았다. 엄마는 이제껏 해온 건 공부밖에 없고, 그런만큼 당연히 생활은 힘들고 우울하기만 해서ㅡ 말하자면 엄마의 내적 깊이와 초라한 생활은 G의 외적인 성공과 내적인 빈곤함과 균형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엄마의 행색이 나아지고, 얼굴이 피더니, 같이 집을 보러다니는 수준에 이르자 균형이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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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오늘, G의 두번째 사진전이 있었다. 서너해만에 보는 G의 첫모습은 사람들 사이에서 술잔을 들고 밝게 웃고있는 모습이었다: "아 나는 그래 이 사진이 참 좋은데, 이게 아주 우연히 유리창에 비친 걸 찍은거거든, 좋지? 근데 이상하게 평론가들은 다 별로라 그러더라. 근데 뭐 어때, 내가 좋은데. 맘에 든다고 말해주니까 반갑네!" G는 내게 사진집과 명함을 건넸다. 여러가지를 종합해보건데 박사학위는 받지 못했지만 과정을 마쳤고, 출판사를 차렸고, 한 철학아카데미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것 같았다. 


사진들 가운데, 벽 구석구석에는 작업노트와 대화록 같은 글들이 걸려있었다. 어떤 글들은 지나치게 감각적이기도, 혹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기도 했지만 글은 대체로 매끄러웠고 읽기에 재미가 있었다. G는 어쨌든 자신의 페이스와 스타일, 주제... 그리고 무엇보다 평화를 찾은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사모님'포스의 (가치판단을 하는게 아니고 이건 정말 그냥 지울 수 없는 기색이다) G가 카메라를 들고 산동네와, 비슷한 풍경의 소외된 곳들을 비집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상상이 안돼 사진에 몰입하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그리고 하이데거와 바르트와 벤야민 같은 각종 학자들의 말로 버무린 글에서도 선그라스를 끼고 사람들의 말을 자르는 G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웃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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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과시욕은 이해가 가는 정도였다. 특히 개인적으로. 무게있는 이름들에 진짜로 공감을 할 때의 어쩔 수 없는 충족감은 나도 항상 느끼는 것이었으니까. G는 드디어 스스로의 허영과, 탐구욕과, 자의식과 현실 등 그 모든 것과 타협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어느정도 G와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긴 세월 어렴풋이 느껴온 G의 내적 갈등이 깔끔히 수렴한 것 같은 모습은 나에게도 어떤 성취감과 희망을 전해줬다. G는 동창들끼리 2차를 간다고, 너희 엄마도 곧 올건데 아빠에게는 늦게 들어간다는 말을 잘 해달라고 했다. 아줌마들끼리 오랜만에 재밌게 노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참 산뜻했다.




그리고 사진들도 마음에 잔잔한 인상을 주는 것들이 참 많았다.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밝으면 밝은대로, 휑하면 또 그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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