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일기

2013. 1. 12. 00:03

1. 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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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팔순기념 앨범을 만든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모으다 처음으로 외할아버지 얼굴을 봤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서른 남짓의 너무 짧았던 생 때문인지, 아빠 없이 자랐을 엄마의 설움이 떠올라서인지, 아무리봐도 외가 어른들의 가부장적인 스타일과 맞지 않았을 부드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한껏 멋부린 머리카락과 옷차림, 고운 얼굴선에 알수없는 눈빛이 모두 슬프기만 하다. 언젠가 술에 취한 엄마가 나도 아빠가 보고싶다며 울던 장면, 가정 밖에 모르는 할아버지를 내몰아서 미안했다던 할머니의 말, 집안 구석에서 발견한 할아버지가 쓴 시와 연애편지 역시. 며칠 전 잠깐 뵌 어느 먼 친척 할아버지가 하신 '그 양반 참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한 마디에 마음이 복잡해져 사진을 펼쳐놓고, 창가에 앉아 차가운 술을 따르며 상상을 뭉게뭉게. 얼굴이 고와서, 시가 예뻐서 슬프다. 젊음이 삶이 덧없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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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아름답고 명화가 향기로운 마을에 자네를 믿고 내 누이를 맡기고 왔네"로 시작하는 편지를 남긴 할머니의 오빠. 사랑하는 누이를 신행보내고 괴로운 마음을 기념해 사진을 찍었다는 이 할아버지. 집안에서 유독 섬세하고 문학적이었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술을 몇 잔 마시다 생각했다. 멋없이 인스턴트 메세지로 쿡쿡 찌르다 ('같이 씻으면 안돼?') 냉담한 반응에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과는 그만 만나야겠다고. 짧고 덧없는 젊음인데, 조금 더 코드가 맞고 속이 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돌이켜 봤을 때 옛날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애틋한 이야기거리가 좀 있는.


새까만 초겨울 밤, 이제는 없는 사람들과의 연애상담.





2. 130111   


앨범이 드디어 나왔다 YEAH! 


팔순 기념으로 시작한 건데 작업중에 욕심을 내다보니 6개월도 넘기고 200페이지도 넘기고 해도 훌쩍 넘겨서 이제야. 가족들끼리 돌려보고 오랜만에 칭찬도 듬뿍 받고, 오늘은 기분이 참 좋다. 내일은 날이 밝자마자 할머니댁에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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