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R

일기

2013. 1. 10. 00:06



신경안정제까지 토해내고선 견딜 수 없어 응급실에 달려갔는데, 역시나 그곳엔 나같이 경미한 환자가 누울 자리는 없었다.




민트색 팔찌, 내 이름과 나이가 적힌 노란색 스티커가 붙은 민트색 팔찌를 차고 웅크려 앉았다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불편했다. 사지를 가누기가, 침을 삼키기가, 숨을 쉬기가 불편했다. 눈물이 뚝뚝 흐르는 건 감정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ㅡ 참을 수 없이 하품이 나와대기 때문이었다. 눈물이 고개의 방향을 따라 입가로 귓가로 떨어졌고, 눈을 뜨기도 점점 불편해졌다.


간호사는: 설사나 토하셨어요? 드신 약은 없고요? 네? wh... Are you on them?


나는 곧바로 부엌 칼로 손목을 그은 여자와 스크린 도어 작업중에 팔을 부러트린 남자, 그리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겠다고 소리지르는 또다른 남자에게 순서를 내어줘야 했다. 사무적인 간호사와 그보다 더 침착한 여자의 엄마. 글쎄요, 일어나보니. 힘든 일이 있었나봐요. 네, 가끔.


나는 형식적인 검사 몇 가지를 거쳐 두어시간을 기다린 후에 위보호제 혹은 진통제 따위를 받을 것이 뻔했다. 신경성 같은 단어들이 더해진 식도염, 위염, 같은 말이 오갔다. 나는 누워있거나 웅크려있거나하던 중에 -어차피 온 몸에 쥐가 나듯 어지러워 방향감각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데- 왜 내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일까 생각했다.




아, 하지만 이제와 따져본들 소용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별다른 기능도 필요도 없는 링거를 달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어디 기대지도 잠들지도 못한채로 보낸 시간만큼, 그것은 괴롭기만하고 도무지 쓰잘데가 없는 생각이었다. 별 의미없는 처방, 뻔한 결과를 기다리느라 이 괴로움을 참아내느니 집에서 수면제나 먹고 누워있는게 백번 나았을 것 처럼. 




그러니 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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