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메모)

일기

2012. 11. 1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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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들, 그런 일들은 그저 일어나고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기도 한 것일까? 나는 아주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비합리적인 미신이 내게 남아있는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묘한 믿음이 그런 것이다.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롤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다, 틀림없이 그럴 것 같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해독>해야만 하는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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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나의 경험을 텍스트로, 희극적 플롯안에서 해독해야할 상황과 사건들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꼈다. 장면을 곱씹어보고, 내 안팍의 여러 관점을 오락가락하다 결국 각색을 마치고 저장을 해야 과거가 올바르게 정리된 느낌이기 때문에. 일례로 하나의 베드신은 동시에 몸과 정신이 합치되는 장면이다가(just barely), 쉽게 변하는 육체의 쾌락이다가, 정복하거나 정복 당하는 힘의 방향이다가, 어느 순간 균열의 상징으로 이어졌다. 소설의 어딘가에 나오듯 육체적 사랑이 영혼의 사랑과 한데 섞이는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몸이 얽히는 동안 나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어 사랑을 완성한다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이 관능적인 장면이 제 3의 시각으로 머리에 비춰지는데서 정신적인 자극을 많이 받았고 대부분은... 몸의 감각 그 자체에 휩쓸렸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섹스를 온전한 사랑의 완성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벼움에 환멸을 느끼지 않도록 그 전후에, 혹은 일상에서 충분히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고 두터운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었는데ㅡ 그리고 그것들은 정말 작고 사소한 말과 표정에서 느낄수도 있었던 것인데. 하지만 그 사람은 더 많이 좋아해달라는 나의 말에 상대방이 왜 이런 뜬금없는 말을 하는지 생각하기보단 자신이 '곧바로 긍정을 하면 그건 거짓말 밖에 안된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냥 사고가 그렇게 작동하는, 게다가 요령이 없는. 그렇게 '처음에는 즐거운 외설적 유희로 보이던 것이 어느사이엔가 불가피하게 생사를 건 투쟁으로 탈바꿈'했고, 관계를 끊어버린 균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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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루치에는 내게 영원한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과거로서 영원히 살아 있고, 현재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점차로 그녀의 육체적, 물질적, 구체적 형태를 잃어갔고, 점점 양피지에 씌어진 어떤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이 되어 조그만 금속 상자에 숨겨져 내 인생의 저 깊은 곳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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