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가

일기

2012. 12. 14. 23:44





'타인의 삶은, 하나의 장면으로만 이해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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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이라는 카뮈의 말이나 <끝장은 항상 똑같은 것이면서도 거기에 이르는 우여곡절은 러시아 산맥의 비탈들만큼이나 다양하다.>같은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처럼. 누구나 각양각색의 드라마를 겪으며 사는 것은 분명해보이는 동시에 그냥 개념적 지식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떨어져있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어도 각자의 삶은(사내의 갈등, 연인과의 이별, 심지어 부친상 같은 이야기까지도) 몇가지 대표적인 사건과 그 사이사이의 장면으로 몇 분, 혹은 몇 시간내에 지나간다. 사람들은 살면서 얼마나 각자의 삶을 타인과 나누며 살까?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통, 공감 같은 것은 정말 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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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는 자신의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X와 우연히 만나 잠깐 타오르다 금방 식어버린 Y. 알고보니 유부남인 Y.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별거를 하고, X를 만나게 됐다는 Y. 줏대없이 떠밀리고 떠밀리는대로 산다는 Y...와 그에 대한 X의 집착. 이야기를 듣는 나는 내가 Y의 이야기에 빠지는 건지, 그 사이사이의 어떤 키워드들이 상기시키는 개인적인 경험들을 떠올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히는 내 기분이 X가 겪는 감정들과 어느만큼 유사할까? 집착, 불안정함, 연민 같은 주제로 내가 떠올리는 개인적인 경험들... 나는 X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까 내 머리속을 헤집고 있는 걸까? 무겁고 골치아픈 감정들이 우리 테이블에 가득한 건 확실했지만 나는 내가 정말 X(의 이야기나 감정, 혹은 사람 X 그 자체)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X는 한참 털어놓으니 속이 한결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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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감정이입?


사람은 처음 언어를 습득할 때, 모르는 단어에 부딪히면 상황과 문맥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유추한다. 후에 그 단어를 다시 접하고 직접 사용해보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조금씩 다듬어가다가 의사소통에 큰 불편이 없는 단계에 이르면 그것을 올바른 의미라고 저장한다. 그래서 한 단어를 놓고 깊게 의미분석을 해보면 사람마다 조금(이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ㅡ 연속적인 색상표에서 어느 점 부터 어디까지가 <붉은>색인지, 혹은 <공감>이란 무엇인지...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라는 것.


나는 가끔 물살이 센 수조 안을 빙글빙글 도는 물고기가 불쌍해서 울고 모성애를 갈구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불쌍해서 울고 상을 당한 친구가 불쌍해서 운다. 사람들은 내게 넌 참 공감, 감정이입을 잘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 물고기와 캐릭터와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냥 그 소재들에서 얻은 씨앗을 개인적인 경험에 발아시키는 것은 아닐까? 긴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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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모두가 외롭다고, 내 말을 좀 들어달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가 관심있게 들어주는 데서 위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외로움이 잠시 다른 감정에 묻히는 것일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가시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도 나를 권태롭게, 들뜨게, 울컥하게, 기분 좋게, 혹은 긴장되게 하는 많은 순간들을 가까운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혹은 그 순간들에 대해 뒤늦게라도 이해받을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까? 


하지만ㅡ 남자들은 자기이야기에 리액션이 좋은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줄은 모른다. 뱉을 수 밖에 없는 감정들에 휩쓸리는 것이 어떤건지 모르고, 가끔 문제가 있을 때에도 내면을 표현할 줄 모르거나, 표현하고 싶지 않아 하거나. 그저 이성에게 느끼는 어떤 <끌림>이 지속되는 한 그 안에서 편히 쉬고싶어 할 뿐. 대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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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없이, 각자의 고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직 사랑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가 없다. 외로움과 소통, 이해 같은 것들과의 타협은 어느정도로 해야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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